외식사업가이자 방송인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옆에 요리 고수이자 방송 새내기인 안성재 셰프가 섰다. 둘은 자주 부딪힌다. 하나의 요리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혹자는 요리백과사전 대 요리사관학교라는 별칭을 붙였다.
사실 요리 방송에서 백종원 대표의 판단을 저지시킬 수 있는 실력자의 등장이 처음이다. 댓글에서는 이런 안성재 셰프의 모습에 “질문 자체가 다르다”, “전문가다”라는 호평이 많다. 인기보다는 명예를, 방송보다는 주방을 더 중요시하는 그의 이번 선택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시청자들을 피 말리는 경쟁 구조로 끌어들이는 TV 프로그램의 흥행 신화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TV를 통해 참가자들의 퍼포먼스를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는 스포츠, 음악 분야가 앞서갔고, 댄스, 게임 등이 대를 이었다.
스타 셰프의 시대가 도래하자 요리 경연대회도 합류했다. 시각과 청각 이외에도 TV로는 전할 수 없는 미각, 후각적 요소가 필요하기에, 레시피를 가르치는 형태 또는 퀴즈나 게임 같은 예능 포맷으로 만족 해야 했지만, 마스터 셰프, 탑 셰프, 아이언 셰프, 헬스 키친 등 몇 가지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요리 경연의 시대를 열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요리 경연 프로그램들이 시도됐다. ‘냉장고를 부탁해’, ‘한식대첩’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지역적이고 오락적인 흥행성에 만족해야 했고, 해외의 성공작들처럼 요식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스타를 배출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 9월 17일, 1화를 시작한 넷플릭스의 미니 시리즈 ‘흑백요리사’는 조약돌의 파문처럼 한 편 한 편이 공개될 때마다 조용한 파문을 이어가고 있다.
‘흑백요리사’는 재야의 고수 80인과 스타 셰프 20인이 ‘흑수저 VS 백수저’라는 계급 전쟁을 벌이며 치열하게 맞붙는 100인의 요리 계급 전쟁이다. 도전자 100 명과 심사위원이 모두 한국인이다. 한국 요식업계의 다양성과 수준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100인과, 유명세를 가진 셰프들도 흑수저와 대결해 잔인하게 탈락하는 구성은 프로그램의 진정성과 요리 세계의 치열함을 잘 담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TV 너머로 함께 판단해줄 수 없는 ‘맛’의 판단은 오롯이 심사위원의 몫이다.
잘 하면 기본이고 자칫하면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일 그 역할을 2명의 남자가 맡았다. 한 명은 대한민국의 성공한 외식업자로 이견이 없을 백종원 대표, 또 한 명은 국내 유일한 미쉐린 3스타 셰프, 안성재 요리사다. 성공몰이를 하고 있는 ‘흑백요리사’에서도 가장 화제의 중심에 있는 사람, 안성재 셰프를 만났다. 인터뷰하는 지금으로서는 4화까지 공개됐다. 넷플릭스 TOP 10 웹사이트에 따르면 ‘흑백요리사’는 9월 16-22일 380만 시청수를 기록해 글로벌 TOP 10 TV 비영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방송을 직접 보았는지? 그렇다면 시청자로서 편집본을 본 소감은.
이렇게 큰 방송은 처음이어서 어떻게 편집될지 상상조차 못 한 채 촬영에 임했다. 처음에는 어떤 콘셉트를 잡아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제작진이 ‘평소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임했다. 요리를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 헤아리고 질문하려고 했는데, 이는 평소 주방에서의 내 모습이다. 물론, 내 주방에서는 화낼 때도 있지만, 방송 에서는 화를 낼 이유가 없었다. 촬영 때는 내 모습밖에 몰랐는데, 전체 그림은 나도 방영 이후 볼 수 있었다. 시청자로서 재밌었다.
방송 이후 가족이나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방송이 공개될 때 해외 행사로 싱가포르에 있다가 어제 막 귀국해서, 아직 가족 외에 만난 사람이 없다. 지인들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아직 크게 체감되는 건 없으나 이번 출연을 계기로 <모수> 에 와보지 않은 많은 분들이 나를 알게 된 것 같다. 참가자들에게 ‘방송 이후 장사가 잘된다’, ‘파인 다이닝 업계에 힘이 된다’ 등 긍정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에 감사하고 싶다. 또 이를 보면서 주방 이면의 어려움을 아는 업계인들이 자신의 일처럼 같이 기뻐해주는 것이 매우 감사하다.
방송 출연이 처음인데, 레스토랑에서처럼 안정적으로 보였다. 참고한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 있나.
아무래도 영상 한두 개는 찾아봤는데, 참고할 인물을 설정하지는 않았다. 심사하면서 어떤 포인트를 말해주는지를 보려고 했다. 그런데 대부분 심사위원으로서 ‘폼’을 잡는 설정이 있기에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했다. 같은 셰프로서 내게 요리를 내어온 셰프를 대하는 것이 기에, 원래 내가 주방에서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 그대로 하자고 마음을 다졌다. 셰프 대 셰프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을 하려고 했고, 최대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상대’와 나만 있다고 생각하려 했다.단 한 번도 방송처럼 “합격입니다”, “불합격입니다”는 말로 끝나지 않았다. 오가는 대화가 많았는데 꽤 잘렸다.
셰프의 팀원이었던 ‘원투쓰리(배경준)’의 요리를 심사할 때, 한 접시를 다 먹는 모습은 배려로 느껴졌다. 40명의 요리를 지속적으로 맛본다는 것은 대단한 노동이었을 것 같다.
<모수> 주방의 엄청난 압박감을 훌륭히 겪어낸 팀원이었다. 결국 좋은 경험을 자기의 것으로 배워 나갔다고 생각한다. 셰프로서 좋은 파인 다이닝 셰프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촬영장에서 성장한 모습을 보니 실제로 뿌듯했다. ‘오리’를 숯으로 굽는 게 쉽지 않다. 방송에 나간 화면에 서는 “실력이 많이 는 것 같다”는 한마디였지만, 많은 대화가 있었다.
1화에서 심사는 ‘맛 그 자체만 보고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요리’로만 평가한다는 미쉐린 가이드의 단일 기준 시스템과 흡사하다. 하지만 맛에도 전통성, 창의성, 밸런스, 다양성 등 다양한 요소가 있을 텐데, 어떤 우선순위 또는 핵심 포인트가 있었나.
맞다. 구체화된 기준이 없으면 심사가 뒤죽박죽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회차가 진행될 수록 비슷한 실력자만 남기 때문에 더욱 그 기준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우선 재료의 활용, 즉 재료가 셰프가 설명하는 맛을 내는 데 제 역할을 하고 있나를 중시했다.
내 취향대로 맛있는지, 내 입에 맞는지가 아니라 맛이 셰프의 의도대로 표현됐는지를 본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요리와 비교하여 그 맛의 수준을 헤아 렸다. 이런 식으로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7, 8단계를 거치며 판단했다.파인 다이닝과 김밥 같은 캐주얼 카테고리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없다. 맞는 단계를 찾아가며 고민했고, 끝내 애매하면 보류하고 백종원 심사위원과 상의했다.
4화까지 시청한 기자 입장에서는, 파인 다이닝 요리 세계에 대한 국민적 이해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고 판단한다. 무엇보다 안성재 셰프의 질문과 반응에 대해 파인 다이닝의 예민함, 섬세함, 정확함에 놀랍 다는 반응이 많다. 개인적으로 출연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며, 또 어떤 수확이 있었나.
마침, 촬영 기간이 <모수>가 첫 번째 투자사와 협업을 종료하고 이전을 준비하는 시기라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넷플릭스 제작진과 첫 미팅을 할 때, 딱 2가지를 강조했다. “모든 것을 걸고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웃음과 재미를 위한 가벼운 프로그램은 사양하겠다”와 “출연하는 100명이 모두 잘됐으면 좋겠다. 외식업이 잘되는 데 일조하는 내용이 라면 출연하겠다”이다. 이후 피디, 작가분들이 제 취지에 공감하고 노력해주신 것 같다. 백종원 대표님도 같은 마음이라고 전해 듣고 전격 출연을 결정했다.
100인의 요리 경연인 만큼, 경연 방식과 순서가 매우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블라인드 테스트, 흑백 대결, 대결 메뉴 결정 방식 등등 이런 것들을 결정하는 데 셰프도 관여를 했나.
방송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규모가 엄청난 프로그램이다. 수많은 크리에이티브 프로세스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제작팀보다는 내가 요리로서는 전문가니까 중간중간 내게 하는 질문에는 성심껏 답변 드렸으나, 관여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의견을 드리는 정도였다.
백종원 심사위원과 평가가 엇갈리는 장면이 많다. ‘장’을 미션으로 한 흑백 대결이 대표적이다. 장맛이 은은해서 좋다는 백종원 대표의 관점과 주연이 주연다워야 한다는 안성재 셰프의 관점이 팽팽했다.
한국 식문화를 대표하는 ‘장’인 만큼 내게는 장의 맛과 매력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백종원 심사위원의 관점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한국 사람에게 새롭다는 관점이 세계인의 관점으로도 꼭 이어지진 않는다. 우리끼리만 새롭다고 좋아한다면 시야가 좁아질 수도 있다. 전 세계인이 보는 프로그램인 만큼, 우리 식문화에 대한 자존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때로는 도전 의식을 가질 필요 있지 않을까 한다.
100인의 요리 중에 ‘1등’과 상관없이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가 있나.
맛본 요리의 수가 많아서 헤아릴 수가 없다. 다만, 인터뷰하는 지금 공개된 4화까지에서는 ‘급식대가’의 음식을 먹었을 때 참 행복했다. 독특하거나 화려한 부분은 없었지만 그 음식에서 느낀 행복감과 따스함이 뇌리에 아직 남아 있다. 처음에는 급식이라고 해서 조미료를 많이 사용하겠지 하는 편견이 있었다. 그래서 빠르게 그분의 팬트리를 봤더니 매우 단순했다. 이런저런 조미료 없이 재료와 손맛으로 살린 요리 였고, 입가에 웃음이 피고 계속 먹게 되는 요리였다.
그분의 요리를 맛볼 때에도 내가 급식 먹는 것을 상상하면서 맛을 봤다. 나도 누군가 매일 급식을 해준다면 이 분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급식 경력인데 아직도 그렇게 아이들이 먹는 밥을 정성 들여 준비하시는 모습에 존경심이 들었다. 밥 한 끼가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 특히 어릴 때 먹는 따뜻한 밥한 끼는 기억에 오래 남고, 나아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나또한 어릴 적 먹은 음식이 미각에 남아서 그것을 끄집어내는 경험을 하고 있기에 아이들에게 밥 한 끼, 급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체감하는 바이다.
방송 이후 “<모수>, 궁금하다”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이전한 새로운 <모수>, 언제 기대해도 좋을까?
한국에서 부동산을 고르고 공간을 짓고 하는 과정에 익숙하지 않은 나의 부족함으로 예정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 내년 초 기대해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약 1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기다려주시고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큰 감사를 드린다.
한국 미식과 외식업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인적 요소 ‘셰프’라는 세계 에서 어느새 ‘롤모델’이 되었다. 이번에도 실력 면에서 한국 요리사를 대표하는 자리를 잘 감당했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또 걷고 싶은 청년들에게 방송에서 못다 한 말을 해준다면.
누구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나라면 요리 사의 삶이다. 요리사는 요리에 진심이어야 한다. 멋진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가졌다면 치열해야 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올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치열함을 좋아한다. 코리 리 셰프, 토머스 켈러 셰프가 그랬고 나는 그들에게서 그렇게 배웠다. 주변에서 많은 것을 고려하며 달리는 모습을 보면 조금 안타깝다. 아무 것도 없이 여기까지 온 나를 보며, 모든 사람이 가능성을 믿고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요리사의 길을 결정했으면 올인하라. 이를테면 일찍 출근 하고 늦게 퇴근하더라도,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라. 그렇 다면 누구든지 자신의 잠재력을 상상 이상으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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