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 속담에 “아들에게 물고기 한 마리를 준다면 하루밖에 살지 못하지만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면 평생을 살아 갈수 있다”는 말이 있다, 시간이 걸리고 위험이 따르지만 스스로 물고기 잡는 과정에서 많은 경험과 가치를 배울 수 있다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이 속담을 외식산업 부분에서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봄을 알리는 입춘이 오면서 여기저기서 개업식 초대를 받는다. 열 곳 중 아홉 곳이 폐업을 하는 코로나 시대에도 희망의 꿈을 안고 창업에 도전하는 이들은 존재한다. 아직은 추위가 매섭긴 하나 바야흐로 창업의 시즌이 다시 찾아오나 보다. 특히 인기메뉴는 제주 흑돼지를 내세운 고기 요리이다. 식재료 가격이 많이 올랐음에도 돼지고기 전문점은 여전히 매력적인 창업 아이템으로 꼽힌다. 조그만 화분을 하나 사 들고 초대받은 개업 점포로 향했다. 창업 컨설턴트라는 직업 탓일까. 점포를 찾아가면서 이내 상권분석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점포 앞에 도착하니 숨이 턱 막혀온다. 잘못된 점포 입지선정으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란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만 도와줬다면, 이런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을 텐데...지인에게도 무료 컨설팅을 해주지 않
보글보글 끓는 얼큰한 국물에 듬뿍 올려진 시래기, 콩나물 등 각종 채소와 그 속에 숨은 돼지뼈는 상상만으로 식욕을 돋운다. 돼지뼈를 한손으로 잡고 젓가락으로 알뜰하게 긁으면 살코기가 솔찬히 나와 감자탕은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감자탕의 유래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1883년에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당시 항만노동자들의 속풀이 해장국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 주던 것이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감자탕은 중년층 및 직장인들이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식사 메뉴이면서 저녁 시간대에는 전골요리와 함께 술 한잔 기울이는 안주로도 제격이라 장사 아이템으로도 손색이 없다. 시간이 흘러 몇 가지 해장국 브랜드를 원조로 내세운 해장국집이 많이 생기면서 차츰 전문적인 분야로 자리잡으며, 콩나물 해장국, 선지 해장국 등으로 세분화돼 왔다. 감자탕은 전수 창업 형태로 시장이 커지다가 본격적으로 국내 외식시장이 커지던 1990년도 프랜차이즈화가 시도됐다. 특히 경기 불황 시대에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먹을거리이기 때문에 성인층은 물론 젊은 학생층까지도 포용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점이 감자탕 전문점의 매력이기도 하다. 감자탕 전문점은 메뉴 역시 다양하다. 감자탕, 뼈다귀탕, 해물탕, 해장
안녕하세요. 제주직업전문학교 고경찬입니다. 오늘부터 제주에 머물며 경험한 저만의 제주 외식산업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제주 외식업의 1번지 칠성로 제주지역에 근대적인 형태의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때는 일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상점들은 관공서와 주택가가 몰려 있었던 제주시 중심부인 현 칠성로와 관덕로 일대에 주로 분포돼 있었다. 이 가운데도 유명 상점들은 거의 칠성로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연유로 칠성로는 “제주상권의 원조지” 인정을 받고 있다. 일제시대의 경성실 지금의 관덕정일대에서 최초의 외식업 장사를 시작한다. 전문은 양과자를 만들어 팔았다. 이곳에 상점들은 대부분의 간판에 상호와 함께“洋品百貨(양품백화)” 라는 글귀를 적어 놓았다. 이는 상점마다 어떤 특정제품만을 취급하지 않고 다양한 품목을 팔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百貨(백화)”라는 명칭이 쓰여졌다해도. 이는 현재의 백화점과는 차이가 있으며 현재 슈퍼마켓과 대형 잡화점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칠성로에 막강한 전통을 고수했던 귀금속, 시계류 판매업의 시초도 일제 때 거슬러 올라간다. 원조격인 수우시계점, 삼시계점등이 칠성로에서 자리를 잡은 이래 외식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