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티가 부흥하는 지역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최근 미국에서는 대도시 외곽의 중소 도시들이 스페셜티 커피 신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두 곳, 텍사스 오스틴과 아칸소 벤턴빌의 이야기를 준비했다.

지난 4월, 휴스턴 커피 엑스포 방문을 시작으로 미국의 여러 도시를 여행했다. 텍사스 오스틴, 아칸소 벤턴빌,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콜로라도 덴버가 목적지였다. 그 도시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커피 회사들이 분포한 곳이다. 로스앤젤레스를 제외하면 모두 작은 도시임에도 스페셜티 커피 회사들이 자리 잡은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라 추측했다.
스페셜티 커피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란 쉽지 않다. 전통적인 커머셜 커피와 간극이 크기 때문이다. 커피는 매일 마시는 기호식품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숙한 맛을 찾는다.
따라서 매번 새로운 도전을 즐기지는 않는 것. 스페셜티 커피는 대중이 선호하는 커피와는 맛의 결이 다소 다르다. 원두 가격이 비싸니 최종 판매가도 높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산지, 가공 방식 등의 정보는 오히려 커피를 더 어렵게 느끼도록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스페셜티 커피가 크게 흥행한 지역들이 있다. 포틀랜드,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뉴욕 같은 도시다. 나는 그 이유를 새로운 문화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진보적인 인구, 그리고 풍요로운 경제 수준 덕분이라고 막연히 짐작해왔다. 실제로 초기 유행 지역은 대부분 이 조건에 부합했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이 흐름이 조금씩 바뀌었다. 이번에 방문한 도시들이 바로 그 변화의 증거다. 이제는 단순히 품질에 관한 이야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 패턴,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젊고 진보적인 인구가 유입되는 도시 텍사스 오스틴과 아칸소 벤턴빌에 대해 소개한다. 또 다른 두 도시, 로스앤젤레스와 덴버의 이야기는 다음 칼럼에서 이어갈 예정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커피를 말하는 도시들을 통해, 오늘날 스페셜티 커피가 향하고 있는 방향을 짚어보고자 한다.

젊은 감각과 테크 산업이 만든 새로운 커피 도시, 텍사스 오스틴
오스틴 Austin은 현재 미국에서 인구 유입이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도시다. 높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캘리포니아 주민에게 매력적인 대안지로 떠오른 것이다. 저렴한 인건비와 낮은 세금 덕분에 수많은 테크 기업이 오스틴으로 이전하면서 도시 전체가 활기를 띠었다. 젊은 층 중심의 스타트업 문화가 발달했으며, 연평균 인구증가율이 2%를 넘어 현재 도시 인구는 약 97만 명, 광역권 인구는 240만 명에 육박한다. 텍사스주 평균연령은 약 39세인데, 그중에서도 오스틴 지역의 중위 연령은 34-35세로 핵심 노동 인구 비율이 매우 높다.

새롭게 부상하는 도시인 만큼 기존 대도시에 비해 임대료 부담이 적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젊은 소비층이 두텁고, 변화하는 트렌드를 좇는 경쟁 브랜드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오스틴은 인구 대비 스페셜티 커피 매장과 로스터리 밀도가 인구 10만 명당 14.7개 매장, 1.4개의 로스터리로 텍사스의 주요 도시 중 가장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대표 브랜드로는 <메디치 커피 Medici Coffee>, <하운즈투스 커피 Houndstooth Coffee>, <피규어8Figure8> 등이 있다.
그중 <프라우드 메리 커피 Proud Mary Coffee>는 2009년 호주 멜버른에서 시작해 커피에 대한 독특한 접근 방식으로 일찌감치 명성을 얻은 브랜드다. 3그룹 에스프레소 머신 두 대를 연결해 6그룹처럼 보이게 만들거나, 서로 다른 브랜드의 그라인더를 재조립해 사용하는 등 장비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열정을 보여준다. 동시에 수준 높은 브런치 메뉴를 함께 제공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7년 포틀랜드에 매장을 열며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2022년 오스틴에 미국 두 번째 매장을 열었다. 오스틴 매장은 멜버른의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왔다. 고객이 커피를 먼저 주문하면, 그 커피를 서빙하며 자연스럽게 음식 주문을 유도한다. 음식이 나올 때쯤이면 첫 커피가 비워지고, 이때 다시 능숙하게 두 번째 커피를 추천한다. 이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서버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방문 당시 직원의 절반 이상은 호주에서 온 이들이었다. 이 흐름을 무심코 따라가다 보면 1인당 40달러를 쓰
는 건 순식간이다. 커피가 8온스(약 236ml) 잔에 제공되는데, 이는 일반적인 미국 카페의 양에 비해 턱없이 적어 비싸다는 논란도 있지만, 내가 방문했을때 매장은 여전히 만석이었다. 총 두 번 방문했는데, 두 번째인 일요일에는 입장에만 1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대부분 테라스에서 기다렸고, 일부는 기다리며 커피를 먼저 주문해 마시기도 했다.
<프라우드 메리 커피>의 ‘덕후’ 기질은 커피 바에서 정점을 찍는다. 벽면에 내부가 보이는 유리 냉동고를 설치하고, 원두를 원통형 실린더에 보관한다. 그 아래에는 레일을 깔아 그라인더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바리스타가 원하는 원두 실린더 아래로 그라인더를 이동시키면 냉동 보관된 원두가 호퍼로 바로 떨어지는 구조다.
원두의 품질을 최상으로 유지하려는 치밀한 설계가 돋보였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아예 분해해서 각 그룹 헤드를 바 테이블에 매립했다. 덕분에 흔한 커피 머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바가 훨씬 개방적으로 느껴졌다. 이는 바리스타가 추출한 커피를 바로 앞 고객에게 직접 건네며 소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효율성보다는 오직 커피 품질과 고객 경험에만 집중한 듯한 바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더 미티어 The Meteor>는 인텔리젠시아 커피 Intelligentsia Coffee의 창업자인 더그 젤 Doug Zell이 2015년, <인텔리젠시아>가 <피츠 커피 Peet’s Coffee>에 인수된 후 스페셜티 커피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이다. 커피 자체의 완벽성만을 추구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커피를 매개로 한 새로운 ‘경험’과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더 미티어>의 정체성은 ‘에스프레소, 샴페인, 체인 윤활유’라는 슬로건에 모두 담겨 있다. 이는 커피, 음식과 와인, 자전거와 커뮤니티라는 3가지 핵심 요소를 결합한 복합문화공간을 의미한다. 커피를 제공하는 커피 바는 피자를 만드는 주방과 연결되어 있다. 홀에는 빽빽하게 와인이 진열되어 있고, 매장의 뒤를 통과해 나가면 사람들이 모여 앉을 수 있는 야외 자리가 있다. 그 옆으로는 자전거 수리와 판매를 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자전거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매장에 방문하고, 다시 그 안에서 커뮤니티가 확장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곳은 수제 피자를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해졌으며, 와인은 내추럴 와인과 유기농 와인 리스트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지속가능성과 생산자 철학의 존중이라는 스페셜티 커피와 와인 애호가의 지향점이 겹치는 지점을 공략한 것으로 보인다. 커피에 국한하지 않은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경험을 확장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려는 시도 등 스페셜티 커피 산업이 앞으로 나아갈 방식을 새로 제시하는 사례라고 생각했다.
월마트가 일으킨 나비효과, 아칸소 벤턴빌
이 지역은 최근 수년간 CEO나 고소득층의 유입이 늘어나면서 고급 주거 지역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젊고 부유하며, 교육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다. 2023년 기준 평균연령은 31.9세로 미국 전체 평균보다 젊다. 이런 인구 통계는 월마트 본사의 존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월마트는 아칸소 경제의 핵심이다.
그 덕분에 뉴욕, 캘리포니아 등 타 지역에서 많은 인구가 유입된다. 또 프록터 앤드 갬블 P&G, 제너럴 밀스 General Mills, 네슬레 Nestlé 등 1450개 이상의 협력 업체들이 월마트와 근접하기 위해 NWA(Northwest Arkansas) 지역에 사무실을 설립했다.
최근 월마트는 새로운 본사 캠퍼스를 오픈했고, 여기에는 12개의 사무실 건물과 푸드홀, 피트니스센터와 보육 시설이 포함된다. 인구는 아직까지 6만 명 정도에 스페셜티 카페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앞으로가 기대되는 이유다. <에어십 커피 AirshipCoffee> 같은 소규모 카페들이 눈에 띄는 가운데, 이번 투어에서 가장 큰 충격을 준 곳은 단연 <오닉스 커피 Onyx Coffee>다.
2012년 존 앨런 Jon Allen과 안드레아 앨런 Andrea Allen 부부가 설립한 회사로, 현재 미국 스페셜티 커피 신에서 가장 많이 주목받고 있다. 남편인 존이 매장 설계, 영상, 패키징 등 브랜드의 모든 시각적인 요소를 책임지고, 2020년 US 바리스타 챔피언이기도 한 아내 안드레아는 생두 소싱부터 품질 관리까지 커피의 핵심을 책임지는 방식으로 역할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내가 방문했을 때 이 지역에만 매장을 7개 운영 중이었고, 또 하나의 새로운 매장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벤턴빌 공항에도 이들의 커피 부스가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은 <바이오닉스 Bionics>. 바리스타는 없고, 로봇 팔을 이용해 커피를 제공한다. <오닉스>의 모든 매장은 동선, 그라인더를 올려두는 바의 각도 하나까지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 눈에 띄었다. 커피 패키지에는 생산자 정보는 물론, 농부에게 얼마를 지불했는지까지 투명하게 공개한다.
또 <도이옌 카페 Doyenne Café>라는 이름의 매장을 운영하면서, 여성 커피 생산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이곳에서 일하는 바리스타 역시 모두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디어 전략도 인상적이다. 영상 촬영을 위한 ‘세컨드 스트리트 스튜디오 2nd Street Studio’를 별도로 운영하는데, 120평 규모의 공간에 여러 개의 촬영 세트와 장비, 팟캐스트 녹을을 위한 방음 녹음실까지 갖췄다.
<오닉스>는 이 공간을 활용해 랜스 헤드릭 Lance Hedrick, 모건 에크로스 Morgan Eckroth 등 스페셜티 커피 관련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하며 전 세계로 팬덤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모건은 <오닉스> 인턴으로 일을 시작해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데, 틱톡이나 숏폼 등 짧은 영상을 통해 <오닉스>를 힙한 커피 브랜드로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작 대표 부부의 모습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최근 스프링데일 Springdale 지역에 오픈한 <오닉스> 매장은 커피뿐만 아니라 테루아에 중점을 둔 차 Terroir Fine Tea, 초콜릿, 인스턴트 커피, 시럽 등 다양한 제품을 직접 제조하고 있다. 제품 중 한국의 태양초 고춧가루와 인도 남부의 홍차를 활용한 차이 티 ‘오닉스 고추장 차이’가 있어 인상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와인 같은 다른 아이템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오닉스>는 이제 커피 회사를 넘어, 디자인과 미디어를 파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 더 가까워 보인다. 아칸소의 작은 도시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향해 나가는 그들의 행보가 개인적으로 무척 인상 깊다.
박근하 커피헌터
20년 경력의 바리스타다. <프릳츠커피 컴퍼니>의 공동 대표.
2014년 동료들과 함께 마포구에 <프릳츠커피> 1호점을 오픈하였고 같은 해 한국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로 세계 바리스타 대회에 참가했다. 주로 스페셜티 커피의 산지를 방문해 생두를 선별하는 일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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