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대한민국 파인 다이닝, 정말 파인(fine)해지려면

  • 등록 2020.03.09 13: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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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다이닝(Fine Dining)의 사전적 의미는 ‘고급 식당’이다. 단순히 가격만 비싼 식당이 아니다. 귀한 식재료, 코스 메뉴들의 맛과 모양, 식당의 분위기와 서비스까지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 품격 있는 식당을 뜻한다. 제대로 된 파인 다이닝이라면 코스 자체로 하나의 스토리를 가진 작품이 된다. 또한 각각의 음식에는 이를 만든 셰프의 철학과 솜씨가 녹아 있어야 한다.

 

 

즉, 일반적인 맛집이 상업예술과 같다면, 파인 다이닝은 순수예술인 셈이다. 진정으로 파인 다이닝을 갈구하는 셰프들은 자신의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식재료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음식의 기교, 스토리, 직원들의 서비스까지 관리해 고객들의 모든 감각을 만족시키려 노력한다. 그러나 2020년 현재. 대한민국의 파인 다이닝은 ‘파인(fine)’하지 않다.

 

파인 다이닝의 시작과 변질

대한민국에 파인 다이닝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2016년부터다. 당시 파인 다이닝은 당장이라도 외식업계의 메인 트렌드가 될 기세로 퍼져나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청담동과 한남동 일대에 파인 다이닝 식당들이 생겨났다. 여기에 한식을 재창조해 한식 파인 다이닝을 선보이는 식당들이 이슈가 끌며 좋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2016년 11월 첫 발표된 ‘미쉐린 가이드 서울’ 역시 이런 분위기에 불을 붙였다. 파인 다이닝을 꿈꾸던 쉐프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의 식당에 미쉐린 별을 다는 꿈을 꾸며 파인 다이닝 식당을 꾸리기에 박차를 가했다. 기존의 코스 요리에 매너리즘을 느낀 소비자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며 파인 다이닝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긍정적이었던 초반 분위기와 달리 현실은 냉정했다. 하나의 문화로 정착됐어야 할 ‘파인 다이닝’에 너무 많은 식당들이 몰렸다. 그러다보니 소위 말하는 ‘한국식 변형’이 일어났다. ‘예약, 식사, 결제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여운이 남는 경험’이 돼야할 파인 다이닝이 ‘값은 비싸지만 기념일에 즐기면 좋은 고급 식사’로 굳어져 버렸다.

 

식사 시간 자체를 ‘하나의 공연처럼 즐긴다’는 개념이 생기기도 전에, 고급스러운 음식과 디테일한 서비스가 제공되지만 ‘너무 비싼 식사’로 이미지가 고착화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파인 다이닝을 찾는 고객은 줄어들었고 대중의 관심도 식어버렸다. 그 결과 아직까지도 파인 다이닝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는 고객들이 많다.

 

 

사실 파인 다이닝은 경제적 여유가 충분한 고객층을 타겟으로 한다. 때문에 전국적인 인지도나 과도한 홍보가 필요가 없는 것이 이론적으로 맞다. 그러나 이는 이상론일 뿐이다.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했을 때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고객들만 식당을 방문해서는 식당을 운영하기 힘들다. 한 번 찾은 고객이 매일 방문할 것도 아니고, 파인 다이닝 식당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많아진 파인 다이닝 식당, 분산되는 고객들, 대중에게 고착화 된 이미지, 현실적인 상황 등 모든 상황이 겹쳐져 한국의 파인 다이닝은 점차 변질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식재료, 알찬 코스 구성, 맛과 미가 보장된 음식, 친절한 서비스에 신경 쓰는 진정한 파인 다이닝 식당은 줄고 겉치레와 높은 가격에만 집중하는 식당들이 늘어났다.

 

 

또한 파인 다이닝을 추구한다고 해놓고 그저 비상식적으로 높은 가격을 받는 평범한 수준의 레스토랑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거기에 파인 다이닝을 추구했지만 수익이 나지 않아 세트 메뉴, 점심 메뉴, 할인 메뉴를 마련해 파인 다이닝이라 볼 수 없는 빈약한 수준의 메뉴를 내놓는 식당도 많아졌다.

 

변질된 식당들이 많아지다 보니 이제는 외식 문화에 관심이 높은 고객들에게 파인 다이닝이라는 문화 자체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지경이다. 말만 파인 다이닝이지 이건 그냥 돈을 벌겠다고 플레이팅만 예쁘게 해놓은 음식을 비싸게 파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파인 다이닝, 문화로서 접근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그렇다면 이렇게 변질 된 한국의 파인 다이닝을 진정으로 파인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모든 일이 첫 단추가 중요하듯 가장 원초적인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파인 다이닝을 문화로 대할 수 있는 셰프들과 고객들의 마인드다.

 

파인 다이닝은 예약부터 결제까지의 모든 과정이 하나의 경험이 되는 새로운 문화다. 친절하고 편리한 예약, 아름답고 멋진 공간, 맛있고 보기 좋은 코스 요리, 친절하고 디테일한 서비스, 깔끔하고 만족스러운 결제 시스템까지 모든 것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때문에 파인 다이닝의 수익성은 회전율이 빠르고 단가율을 따져서 운영하는 일반 식당보다 떨어진다. 진정한 파인 다이닝을 운영하려는 셰프들은 파인 다이닝은 수익을 생각해서는 도전이 불가능한 분야라고 입을 모은다. 자신이 장인으로서 하고자 하는 요리를 그려내기 위해 평균 이상의 투자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파인 다이닝은 이런 셰프들의 철학을 바탕으로 마련돼야 한다. 그래서 이를 경험한 고객이 오래도록 여운이 남아 다시 즐기고 싶어지는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때문에 파인 다이닝을 제공하는 셰프들의 철학과 올바른 관점이 필수적이다. 또한 이를 즐기는 고객들 역시 파인 다이닝을 식사에만 국한 짓지 말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오감을 활용해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밖에도 파인 다이닝에 대한 올바른 문화를 새내기 셰프들과 고객들에게 알리는 것 역시 파인 다이닝 업계가 해야 할 일이다. 앞서 언급했듯 경제적 여유가 충분한 고객들만으로는 식당을 유지하기 힘들어진 만큼. 파인 다이닝을 하나의 문화로서 받아들이는 고객들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인드가 갖춰졌다면 다음은 셰프들의 역량이다. 우선 셰프들의 경우, 자신들이 ‘파인 다이닝 식당을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이 되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파인 다이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차별화 된 고급 식재료다. 셰프들에 따라 파인 다이닝에서 식재료의 중요성이 50% 이상이라고 보는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셰프들은 파인 다이닝에 도전하기 전 제대로 된 식재료를 공급 받을 수 있는지, 혹은 직접 생산이 가능한 지 판단해야 한다.

 

 

이후 식당을 차릴 장소 마련, 식당 인터리어 및 공간 구성, 서비스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직원들을 고용할 수 있는 자금력이 있는지 면밀하게 생각해야한다. 파인 다이닝에서 공간의 중요성은 언급이 무의미 할 정도다. 또한 코스 메뉴를 서빙하고 음식에 관해 설명하며, 고객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할 직원들의 서비스 역시 파인 다이닝의 일부다.

 

그리고 이런 파인 다이닝 식당 운영에는 막대한 자금이 든다. 자신이 모은 돈과 대출을 낀다고 해도 감당해 내기가 어렵다. 예약이 밀려 고객을 모두 받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많은 식당이 아니라면 대부분 경영난에 허덕이는 것이 파인 다이닝 식당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인기가 많던 식당들조차 빈자리가 있는 날도 많아졌다며 고충을 털어놓는 상황이다. 때문에 셰프의 자금력 역시 파인 다이닝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런 조건들이 갖춰졌다면 셰프 자신의 역량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요리 실력, 플레이팅, 코스의 스토리 구성, 본인의 식당에서 즐기는 파인 다이닝이 하나의 공연이 되도록 하는 기획력까지. 셰프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엄격한 평가와 노력이 절실하다. 이런 조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파인 다이닝 식당 오픈을 과감히 미루라고 조언하고 싶다.

 

한국의 파인 다이닝, 이런 점도 개선돼야

전 세계적인 파인 다이닝의 추세를 상중하로 구분한다면 한국의 파인 다이닝은 ‘하’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국의 파인 다이닝이 발전하려면 첫째로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 현재 많은 파인 다이닝 식당이 생기고 있지만 가격, 즐길 거리, 메뉴 구성, 와인 리스트 등에서 확실한 차별화가 이뤄진 곳이 많지 않다.

 

 

가격 역시 10만원에서 30만원 수준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파인 다이닝이 하나의 문화가 되기 전, 과도하게 비싼 식사라는 한국적 정서가 끼어들었기 때문에 식사에 중점을 두고 보편적인 가격대만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는 희망이 없다.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울트라 바이올렛’의 경우, 제대로 된 철학과 수준급 음식을 제공함과 동시에 미디어 아트를 레스토랑 안에 끌어들여 파인 다이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해당 식당은 한 끼에 100만원에 달하는 가격임에도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무조건 비싼 가격대의 식당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많은 가치가 더해지고 고객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파인 다이닝 식당들이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10만원, 30만원, 50만원, 100만원 등 다양한 가격대에서 각각의 가치를 지닌 파인 다이닝 식당들이 나와야 한다.

 

두 번째는 차별화된 식재료다. 한국의 파인 다이닝은 대부분 서울의 중심부에 식당들이 몰려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은 거주민들이 산다는 동네에 집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재료를 공수해 오는 과정에서 신선도와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상당수의 파인 다이닝 식당들이 비슷한 재료로 모양만 다른 음식들을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도 이 것에 있다. 타겟팅과 접근성 등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라고는 해도 차별화된 신선하고 좋은 품질의 식재료가 중시되는 파인 다이닝이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때문에 도심 지역이 아닌 식재료가 풍부한 여러 지역에 자신만의 길을 가는 파인 다이닝 식당이 나와야한다. 그래서 지역의 특산물과 식재료를 적극 활용하는 파인 다이닝 식당들이 인기를 끌고, 전국적으로 파인 다이닝을 찾는 고객들이 많아져 시장이 확대돼야 한다. 이는 지역의 특산물을 소비하고 파인 다이닝 문화를 보급하는데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연, 전시, 문화 등 새로운 가치와 파인 다이닝을 접목시켜 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해외의 사례에서처럼 자신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차별화되고 식사 그 이상의 가치를 선사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아름다운 공간과 풍경에서 하는 식사 외에도 식사의 품격을 올려주는 선에서의 다양한 도전이 필요하다.

 

 

이런 도전이 없다면 우리 나라에서의 파인 다이닝은 지나치게 비싼 식사라는 인식을 벗기 힘들다. 직원들의 서비스에서 디테일을 극대화 하거나, 가치 있는 작품이나 음악을 선사하거나, 식당만의 차별화 된 에프터 서비스 등을 마련해 계속적인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멋진 공연장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름다운 공연을 감상하고 나면 그 감동은 평생을 이어진다. 파인 다이닝 역시 이러한 하나의 문화가 돼야한다. 값 비싼 식사라는 죄의식이 아니라 그 정도의 가치가 충분했다는 만족감을 선사하는 파인 다이닝이 돼야한다.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 한 단계씩 고객들이 파인 다이닝 문화에 적응하도록 해야 한다.

 

 

2~3시간씩 이어지는 식사 시간조차 견디기 힘든 사람들이 태반인 우리나라에서 현재와 같은 파인 다이닝의 변질은 우려스럽다. 보다 역량 있는 셰프들이 올바른 철학을 가지고 파인 다이닝을 추구하여 한국의 파인 다이닝도 세계적인 반열에 올라서길 바라본다.

남혁진 칼럼리스트 apollon_nhj@foodnews.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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