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인사이트] 식품기업으로 나아가는 방앗간

  • 등록 2025.03.28 10: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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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을 책임지는 전통


"참기름을 맛있게 짜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아버지에게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 배웠다.

 

소쿠리 잡는 법, 주걱 드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따라 하며 익혔다."


 

옛간이 자리한 울산 울주군 소야정길에 가까워지자 고소한 참깨 냄새 가 퍼졌다. 3대 경영자인 박민 대표는 “할아버지는 참기름 향이 만 리까지 퍼진다고 하셨다”며 반겼다. 그는 울산 정자동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는 집 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엔 ‘방앗간집 아들’이라는 말이 부담스럽고 싫었다 는 그가 어떤 연유로 방앗간을 물려받아 연 매출 수십 억에 이르는 식품기업 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걸까.

 

올해로 업력 65년을 맞은 옛간의 시작은 1959년. 국민학교 교사였던 박일황 창업주가 부업 삼아 시작한 방앗간이었다. 그는 당시 고래잡이로 유명했던 울산 장생포의 고래 기름 틀을 보고 참기름을 착유하는 나무 틀을 개발했다. 마침 그의 아내 윤기출 여사가 참깨 농사를 짓던 참이었다. 그렇게 짠 참기름 이 입소문을 타면서 이내 동네의 인기 방앗간이 됐다.

 

교직에서 퇴직한 후 부 업은 본업이 되었고, 1988년 2대인 박영훈 대표에게로 가업이 이어졌다. 박영훈 대표는 대학에서 8년간 배관학을 가르친 만큼 금속과 기계에 능숙했다. 그의 손에서 나무로 만든 1대의 기름 틀이 보다 정밀한 기계로 발전했다.

 

 

참깨를 볶고 찌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온도’를 고려해 압력으로 인한 온도 변화, 착유 과정 중 깨와 깨가 부딪혀서 타는 현상을 최소화한 장치를 개발해 기름 틀을 현대화했다. 또한 참깨가 타는 주된 원인이 불순물임을 파악하고, 세척 공정을 강화했다. 물로 세척하는 1차 과정을 거친 후, 저온으로 볶아낸 깨에 바람을 주입해 불순물을 한 차례 더 제거하는 풍제 시스템을 추가한 것. 대를 잇기 위한 부모님의 노고를 모르지 않았지만, 박민 대표는 가업을 잇기 보다 전공인 경영학을 살리고 싶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기에 안정된 직장에 근무하며 부모님이 방앗간을 그만두도록 돕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그랬던 그의 생각이 바뀐 것은 2010년 여름 무렵, ‘식품기업’이라는 단어가 머릿속 을 스치면서다. 방앗간을 기업으로 만들면 되겠다는 깨달음이었다. 그 순간 부터 방앗간은 더 이상 그에게 촌스러운 단어가 아니었다. 박민 대표는 “참기름의 맛은 이미 완성되었으니, 내가 할 일은 제조 프로세스 를 구축하고 경영과 제품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가업을 이어 받은 후 그는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전통 방식을 꼼꼼히 계승하기 위해 세세 한 부분까지 기록해 데이터화했다. 또 자동화 과정에서 기존 수공업 방식의 오 차를 줄이기 위해 특수 로봇을 개발하는 등 생산공정의 현대화에 힘썼다.

 

오히려 방앗간을 닫는 게 목표였다는 말이 어쩐지 이해된다. 어떤 이유였나.

 

2009년부터 아버지는 여러 번 가업을 잇기를 권하셨다. 처음에는 완강히 반 대했다. 어릴 때부터 ‘방앗간집 아들’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는데 그 말이 정말 싫었다. 참기름 한 병 팔아도 남는 건 1000원, 2000원. 그런데도 밤늦 게 한 시간 넘는 배달지를 오가는 부모님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나와 동생 중 누군가는 이 일을 계속 이어가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을 때도 내 선택지는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데 사람이 참 이상하다. 어느 날 문득 방앗간 이 다르게 보였다. 방앗간을 기업처럼 운영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 다.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마케팅과 브랜딩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자연스레 큰 그림이 그려졌다.

 

방앗간을 식품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오랜 시간 지켜온 참기름의 맛은 수준급이었다. 문제는 이 뛰어난 맛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당시 참기름 시장은 대 기업이 장악하고 있었고, 전국의 개별 방앗간 중 브랜딩과 마케팅에 집중하 는 곳은 거의 없었다. 먼저 6개월간 시장조사를 했다.

 

유통회사에서 배달하며 현장 경험을 쌓고, 대리점에서 일하며 유통 구조를 배웠다.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긴 뒤부터 본격적으로 브랜딩 작업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참기름 만 잘 짜면 되지, 왜 복잡한 일을 하냐”고 하셨지만, 참기름을 브랜드화하는 일에 확신이 있었다. 또 ‘찜누름 방식’이나 ‘보국 제조 방식’ 등 전통 방식을 눈 에 보이는 단어로 만들려는 시도를 이어나갔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브랜딩했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에 노력을 기울였다. 울산 정자동의 바닷가 마을에서 살던 시절, 아버지는 자주 바다를 보러 나갔 다. 그때 아버지가 “방앗간에서 바다까지 100m가 채 안 되는데, 밖에 나가면 참기름 냄새밖에 안 난다”고 이야기했더니 할아버지가 “참기름 냄새는 만 리 까지 간다”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품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토대 로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어 홍보한 결과, 소비자 반응이 좋았다. 이후에도 제 품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 어졌다. 참기름을 마트에 입점시키고 첫 시식 행사를 진행했을 때, 산낙지와 주먹밥을 준비했지만 예상과 달리 반응은 좋지 않았다. 고민 끝에 손에 참기 름을 바르고 뚜껑을 열어 진열해두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 전략이 효과를 보면서 참기름 매출이 급증했다.

 

아버지 말씀처럼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맛 아닌가.

 

맞다. 제게도 참기름을 맛있게 짜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아버지에게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 배웠다. 소쿠리 잡는 법, 주걱 드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따라 하 며 익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생전에 아버지와 나눈 이야기를 글 로 정리해 기록하기도 했다.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참기름을 직접 짜보니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한 번에 깨를 약 7.5kg 바구 니에 담아 세척한 뒤, 솥에 붓고 볶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깨가 물에 젖으면 15kg 정도로 불어나서, 장갑을 끼고 작업해도 손이 엉망이 된다. 초창기에는 손톱이 살 속 깊이 파고들어 통증이 심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파라핀 베스에 손을 3분은 담가야 겨우 손가락이 움직였다. 사람이 직접 하는 일이 많다 보 니 몸이 힘들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자동화 도입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해 어떻게 하면 맛은 유지하되 더 편리하게 일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 아버지는 “자동화는 안 된다. 손맛이 중요하다”고 하셨지만, 저는 일단 시도해보겠다고 고집했다. 전국의 식품회사들을 찾아다 니며 기계 개발을 제안했지만 대부분 거절당했다. 신제품을 개발해서 만든다 해도 수요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몇 년간 다양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파트너 를 찾던 중, 울산이 로봇팔이 가장 많은 지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업 도시답게 자동화 전문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울산에서 뜻이 맞는 기술자들 을 만나 로봇 개발을 시작했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현장에 맞는 시스템을 완성할 수 있었다.

 

지금도 깨 농사를 직접 짓나.

 

아버지 때까지 깨 농사를 직접 지어 참기름 제조에 사용했다. 하지만 2017년 부터 깨를 수매해 사용한다. 그즈음부터 한국의 날씨가 급격히 더워졌다. 태 풍 없는 여름과 비가 많이 오는 가을이 이어졌다. 참깨는 날씨에 큰 영향을 받 는 작물이다. 성장 중에 비를 맞으면 쉽게 썩어버린다. 예측하기 힘든 날씨 때 문에 밭 관리가 어려워졌고 자연스럽게 농사를 중단하게 됐다. 현재는 전라 도, 경북 울산 등지에서 깨를 수매하고 있다. 다음 주 화요일에는 비 피해가 적 은 전라도에 4만 평 계약 재배를 체결하러 갈 예정이다.

 

직접 농사 지을 때와 수매할 때의 차이는 없나.

 

깨 수매처가 다르면 종자도 다르기에 볶는 시간이나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깨를 받으면 먼저 종자와 껍질 두께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처 음에는 생깨를 엄청 먹었다. 숙련된 아버지는 눈으로 보고 만져보면 바로 파 악하지만 저는 그게 될 리 만무했다. 방법을 찾다가 홍삼 판독기를 발견했다. 암실에서 빛을 투과해 보는 것인데 홍삼이 아닌 깨를 올려도 속이 비었는지 껍질이 두꺼운지 알 수 있었다. 섬유질 확인을 위해서 현미경으로 깨를 정밀 하게 관찰한다. 깨짐 정도를 검사하는 일이다. 새로운 거래처가 생기면 이 과 정을 거쳐 깨 선별 작업을 한다. 고소함의 정도, 손으로 비볐을 때의 강도 같은 특성을 파악하는 과정이다. 정해둔 기준에 맞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는다.

 

참기름 내리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깨를 물로 세척하고 볶은 후 정선, 착유한 다음 마지막 과정으로 포장이 이루 어진다. 정선 과정은 옛간이 특허를 보유한 풍제 기술로 불순물을 제거하는 중요한 단계다. 대량으로 세척하고 볶을 수도 있지만 불순물을 최대한 제거 해 품질을 높이기 위해 7kg 단위로 깨를 씻고, 볶은 후 바람으로 불순물을 한 차례 더 날린다. 잘 볶은 깨는 정선 후 진공관을 통해 착유기로 넘어간다.

 

참기름 외에도 판매하는 제품군이 많다.

들기름이나 생들기름을 비롯해 볶음 참깨, 재래김 등 여러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깨를 주로 다루는 기업이다 보니 곡물 제품을 많이 개발했다. 옥수수차 나 결명자차, 보리차 등 다양한 곡물 차를 생산하고 있으며 볶은 알갱이 형태 로 판매한다. 2년 전부터는 김을 출시해 판매하고 있다. 팬데믹 이전에 일본 관광객이 부산에 왔다가 옛간 참기름을 사러 관광버스를 타고 찾아오기도 했 는데, 그때 한국 김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옛간 참기름을 바른 김을 2년 전 출시했다.

 

해외 수출도 하고 있나.

 

일본, 케냐, 호주 등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홍콩 미쉐린 가이드에 소개된 <캘 리스 김밥>의 유은하 대표를 미국의 한 박람회에서 알게 되었고, 옛간 참기름 을 사용하고 싶다고 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유 대표는 홍콩의 고급 식료품 마 트인 ‘시티 슈퍼’ 바이어로도 활동해 수출 이야기를 이어오다가 올해 3월부터 납품하기로 확정했다. 최근 일본의 한 기업과도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한국 의 참기름과 들기름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중해 올리브유와 견줄 수 있는 제 품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계획 중인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나.

 

커피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곡물을 볶는 전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보니, 커피 로스팅에도 관심이 생겼다. 실제로 깨 볶는 방식으로 커피를 볶아 봤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 커피를 대량으로 로스팅하는 국내 공장들을 견학 하며 시장조사를 마쳤다. 옛간의 기술로만 가능한 로스팅 원두를 열심히 기 획하고 있다. 그 외에도 옛간 참기름을 활용한 라면과 RTD 옥수수 음료도 준 비 중이다. 옛간에 차로 끓여 먹을 수 있는 알갱이 옥수수차 제품이 있는데, 한 달에 수 톤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많아 RTD 제품을 구상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오랜 세월 쌓아온 전통 기술로 좋은 제품을 만들려는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 다. 참기름으로 시작했지만 대한민국 식탁에 고소함을 가득 더하는 식품기업 이 되자는 목표를 갖고 임한다. 선대에게서 이어받은 전통 기술을 활용해 앞 으로도 제품의 다양화를 시도할 예정이다.

 



본 콘텐츠는 레스토랑, 음식, 여행 소식을 전하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바앤다이닝'과 식품외식경영이 제휴해 업로드 되는 콘텐츠입니다.

관리자 rgmc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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