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항일 비행군단을 조직하고 임시정부 국무총리까지 지낸 강인한 무인 노백린 장군과 2남2녀, 그리고 황해도 냉면.
지난겨울, ‘얼’어 ‘죽’어도 얼음이 가득한 ‘아’이스 음료를 고집한다는 ‘얼죽아’족이 등장하며 화제를 모았다. ‘아이스’를 고집하는 풍조가 젊은 세대의 패기 어린 유행처럼 여겨지지만, 한반도의 식음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민족에게는 오래전부터 비슷한 본능이 있었다.
지금은 여름철 별미로 사랑받는 ‘냉면’이 대표적인 예다. 살얼음을 동동 띄운 차가운 국물에 메밀면을 말아 먹는 ‘냉면’은 고려 중기의 고문헌에 처음 기록되었으며, 조선 후기에 쓰인 「동국세시기」에도 겨울 제철 음식으로 소개되었다.
냉면의 주재료는 메밀 씨앗. 북녘 지역에서는 한여름 새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폈다가 지면 열매가 맺히고 늦가을에야 씨앗을 턴다.
또한 기온이 낮은 탓에 오랫동안 은근하게 익은 동치미가 가장 좋은 맛을 내는 계절도 겨울이었다. 소고기 육수에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섞어 탱탱한 메밀면과 곁들이는 이냉치냉의 조합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노백린 장군의 손자 노영탁은 당시 할아버지가 냉면을 집에서 만들기는 어려워 배달 음식으로 즐겼는데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등 고기 고명만을 올리고 고춧가루를 약간 뿌렸으며, 기다란 동치미 무와 곁들였다고 증언한다.
냉면을 즐겨 먹었다던 역사 속 인물로는 고종과 김구가 이름 높지만, 황해도 출신의 노백린 장군과 그의 2남 2녀도있다.
황해도 송화의 시골에서 태어난 노백린. 어릴 때부터 큰 키와 풍채, 호탕하고 총명한 성격이 돋보였던 그는 21세의 나이에 대한제국 정부 관비생으로 선발돼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게이오 의숙, 세이조成城학교를 거쳐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무인의 길에 들어선 그는 5년 뒤인 1900년 귀국해 육군참위, 한국무관학교 교관으로 재직하는 등 육군의 요직을 맡았다. 1905년 을사조약을 기념하는 연회에 참석해 이완용, 송병준 등 매국노 세력을 개처럼 “워리 워리” 하고 부르며 모욕을 주었다는 일화는 그의 굳건한 심지와 기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1907년 일제가 대한제국군을 강제로 해산시키자 안창호, 윤치호와 신민회를 조직해 활동하다가 1910년 미국으로 망명하기에 이른다. 하와이에서 박용만과 함께 국민군단을 창설하고 군사 훈련을 통해 독립군을 양성했다.
191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언론지 ‘태평양시보’를 창간해 독립운동을 고취하기도 했다.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무부총장을 맡았다. 하지만 육군보다는 공군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 판단하고 교포들을 설득해,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최초의 항일 비행사 양성소 ‘윌로스 비행학교’를 설립했다. 3년 뒤에는 11명의 졸업생을 배출할 정도였다.
1923년에는 임시정부 국무총리에 취임했으며, 1924년 5월에는 참모총장으로서 독립군 육성에 힘쓰기를 계속한다. 1926년 1월 22일 상하이의 어느 단칸방에서 심장질환으로 세상과 등진 그의 나이는 52세였다. 정부는 노백린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한편 그의 독립을 향한 투지와 정신은 오랜 해외 생활로 떨어져 지낸 자녀들에게도 오롯이 이어졌다. 장녀 노숙경은 의사인 남편과 함께 하얼빈에서 병원을 운영했는데 독립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직접 남장하여 상하이를 오갔던 여장부였고, 장남 노선경 역시 해외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참여했는데 신의주에서 피검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차남 노태준은 아버지 뒤를 이어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유학한 뒤 대한제국 군대의 근대화와 자주화에 힘썼다. 김구가 이끌던 한국국민당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중일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임시정부의 광복군을 편성해 병력을 확대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미 전략정보국과 합동으로 ‘독수리작전’을 벌여 항일전선을 구축하기도 했다. 간호사로 근무하던 차녀 노순경은 1919년 3·1운동 때 태극기를 만들어 만세를 부르다 시위 현장에서 체포되어 징역 6월을 선고받았는데, 서대문 형무소 8번 방에서 유관순과 함께 옥살이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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