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사이트] K-위스키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K-위스키 시장이 뜨겁다. 2021년 9월,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가 국내 싱글 몰트위스키 ‘기원 소사이어티 컬렉션-호랑이, 유니콘, 독수리’를 선보이고, 국제주류품평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한국 위스키의 가능성을 알리더니, 지난 2월 마침내 ‘기원’의 첫 번째 정규 배치를 출시했다.

 

풍부한 오크 향 속에 바닐라의 달콤한 풍미가 은은하게 감도는 가운데, 한국적인 스파이시함이 화룡점정을 찍는다는 평이다. 경기 남양주시 백봉산 기슭에서 달큰한 맥아 향에 빠져 있는 도정한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 대표를 만났다.

 

 

‘기원’의 정규 배치 출시를 축하한다. 주변 반응이 어떤가?

 

매우 뜨겁다. 국내 바에서는 이미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수요가 높고, 해외 수출한 미국, 싱가포르, 홍콩, 대만, 일본 등지에서도 구입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당화부터 발효, 증류, 숙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한국의 사계절 속에서 빚어낸 첫 싱글 몰트위스키라는 점에서 소장 가치가 높지만, 무엇보다도 위스키를 잘 아는 바텐더들 사이에서 퀄리티가 좋다는 후기가 들려와 기분이 좋다. 캐스크 숙성 3년도 안 됐는데 풍미가 깊은 것이 신기하고, 한국적인 매운맛이 잘 구현됐다는 평이다.

 

‘기원’이라 이름 붙인 배경은?

 

사전에 실린 ‘기원’이 가진 두 가지 의미를 담았다. ‘사물이 처음으로 생김’이라는 의미에서는 한국 싱글 몰트위스키의 시작점이라는 뜻을 내포했고,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빌다’라는 의미로는 월드 클래스의 위스키로 도약하길 바라는 희망을 담았다.

 

 

위스키 증류소를 세우기 전, 국내 1세대 수제 맥주 브루어리 ‘핸드앤몰트’의 창립자로 이름을 알렸다. 그간 걸어온 길이 궁금하다.

 

평소 집에서 직접 맥주를 빚어 마실 정도로 홈 브루잉과 수제 맥주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으로 와서 직장을 다니다가, 수입 수제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고 가능성이 있겠다 싶어 회사를 나와 2014년 핸드앤몰트를 차렸다.

 

품질 좋은 수제 맥주 브랜드로 입지를 다져 2018년 오비맥주를 운영하는 AB인베브에 인수돼 더욱 성장했다. 그다음 스텝은 싱글 몰트위스키였다. 외국 친구들로부터 “한국 사람들은 위스키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직접 만들지는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온 터라, 언젠가 한국을 대표하는 위스키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항상 품고 있었다.

 

운 좋게도 지인을 통해 앤드류 샌드 마스터 디스틸러 겸 블렌더를 소개받게 됐다. 그는 글렌리벳을 포함해 영국 스코틀랜드 및 일본의 유명 증류소에서 40여 년간 경험을 쌓아온 베테랑이다.

미팅차 서울에서 만난 그는 곧 한국 문화와 사랑에 빠져 아예 한국에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교포인 나, 영국에서 온 앤드류 샌드, 그리고 한국인 직원, 3주체가 한국의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모였다’는 의미로 ‘쓰리소사이어티스’라고 이름 붙인 증류소를 2020년 가동하게 됐다.

 

 

경기 남양주시에 증류소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제주도부터 부산, 광주, 경기도 파주에 이르기까지 전국 곳곳을 앤드류와 3년간 탐방한 끝에 이곳이 위스키 생산에 적합하다고 결론 내렸다. 계절별 연교차가 심해 겨울엔 영하 30℃까지 내려가고, 여름엔 영상 40℃까지 오르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선 캐스크가 마치 아코디언처럼 여름에는 팽창하며 원액을 머금고, 겨울에는 수축하며 원액을 내보내기 때문에 위스키를 빠른 기간 내에 숙성시킬 수 있다. 이 지역이 예부터 물이 맑다는 점도 큰 요인이 됐다.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깨끗한 지하수를 받아 위스키의 당화, 발효, 희석 과정에 쓰고 있다.

 

한국적인 위스키를 구현하기 위해 어떤 점에 신경 썼나?

 

앤드류와 함께 점심으로 제육볶음을 먹으며, 이 매운맛을 위스키에 담아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한식의 매운맛은 다른 나라의 매운맛과는 다르다. 달짝지근하면서도 풍부한 감칠맛을 지녔다.

이런 매력이 부각되도록 증류 온도와 발효 기간 등을 연구한 끝에 달콤한 바닐라 향과 시트러스한 풍미, 그리고 매운맛이 피니시로 남는 위스키를 만들 수 있었다. 패키지에도 신경 썼다. ‘아저씨가 마시는 술’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해 젊은 세대나 여성에게도 어필하기 위해 화장품 디자이너를 영입해 자개, 수묵화에 영감 받은 문양을 모던하게 라벨에 담았으며, 패키지 상자 속은 홍경희 작가의 민화 작품으로 꾸몄다.

 

정규 배치 출시 전, 200ml 소용량으로 소사이어티 컬렉션을 선보인 바 있다. 어떤 의도였나?

 

한날 한시에 생산된 위스키 원액이 한국 사계절 속에서 빠르면서도 어떻게 맛있게 숙성되는지를 위스키 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숙성 기간만 달리해서 3가지 버전을 선보였다. 13개월 숙성된 호랑이 에디션, 20개월 숙성된 유니콘 에디션, 26개월 숙성된 독수리 에디션이 그것이다.

 

각 제품은 불과 5-7개월 차이밖에 안 나는데, 숙성 기간이 오래될수록 스파이시한 맛과 깊은 오크 풍미가 두드러진다는 평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몇 년에 걸쳐 숙성되는 맛이 한국에서는 몇 개월에 걸쳐 구현되니 위스키 만드는 사람들도 신기해했다. 일본, 대만 못지않게 한국도 좋은 위스키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배치 1은 버진 아메리칸 오크에서 2∙3년 숙성돼 알코올 도수 40%로 병입됐다.

해당 캐스크를 선택한 이유는?

 

버진 아메리칸 오크가 한 번도 숙성에 사용되지 않았던 새 오크통인 만큼 증발량이 많아 숙성이 빨리 되고 풍미도 더 깊어진다는 장점이 있었다. 앞으로 두세 달 뒤에 출시될 배치 2∙3은 다른 종류의 오크통에서 숙성된 원액을 블렌딩해 출시하려고 테스트 중이다. 기존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위스키를 기대해도 좋다.

 

배치 1은 스코틀랜드산 보리로 만들었는데, 앞으로 한국산 재료로 만든 위스키를 생산할 계획이 있는가?

 

한국의 위스키 산업이 앞으로도 더욱 커지려면 국내산 보리로 만든 맥아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생산된 보리와 물, 효모로 만든 원액을 신갈나무, 떡갈나무 등의 한국 나무 캐스크에 숙성시킨 ‘100% 한국 위스키’를 선보이려고 준비 중이다. 이를 위해 2020년부터 가평 청평면에 국산 품종의 보리를 재배해왔다.

 

전 세계적으로도 직접 수확한 보리로 위스키를 만드는 증류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애주가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외국인에게 당당하게 추천해줄 수 있는 ‘진짜 한국 위스키’를 만들고 싶다.

 

숙성고를 둘러보니, ‘와송’, ‘고추’라고 쓰인 캐스크가 눈에 띈다. 어떤 실험을 하고 있나?

 

숙성고는 우리만의 재기 발랄한 실험으로 가득 찬 보물 창고다. 오래된 기와지붕에서 자라는 다육질 식물인 와송, 청평의 특산물 홍고추 등 다양한 한국의 식재료 뿐만 아니라, 국내 술도가들과 협업해 복분자주나 안동 일엽편주를 숙성했던 오크통에서 위스키를 숙성하는 등 3천3백여 개의 캐스크가 신기하고 흥미로운 결과물로 가득 차 있다.

 

 

국내 첫 싱글 몰트위스키를 만들면서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 같다. 어떻게 극복했나?

 

높은 주세가 발목을 잡았다. 한국에서 만들어도 전통주가 아닌 위스키로 분류되기 때문에 온라인 배송이나 유통도 어렵고, 세금이 많이 붙어서 수입 위스키보다 판매가가 높아진다. 주세가 개선된다면, 현재 아시아에서 위스키 강국으로 손꼽히는 일본과 대만을 뛰어넘을 정도로 한국의 위스키 시장이 눈부시게 성장하리라 확신한다. 2년 전 수제 맥주에 대한 주세가 풀린 것처럼, 위스키와 관련된 세금 규정도 곧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세계에 한국 위스키의 위상을 알릴 수 있는 제품을 계속 출시하는 것이다. 이미 기원으로 2022년 ‘샌프란시스코 국제주류품평회SFWSC’ 싱글 몰트 부문 금상을 수상한 바 있지만, 좀 더 굵직한 국제 대회에도 제품들을 선보여 한국에서도 좋은 위스키가 나온다는 이미지를 전 세계인에게 심어주고 싶다.

 

한국에서 생산된 보리와 물, 효모로 빚어내고, 신갈나무, 떡갈나무 등의 한국 나무 캐스크로 숙성시킨 ‘100% 한국 위스키’를 선보일 계획이다.


  • 도정한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의 대표. 재미 동포로 UCLA를 졸업한 후, 한국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국내 1세대 수제 맥주 브루어리인 '핸드앤몰트'를 2014년 창업했다. 이후 영국에서 온 앤드류 샌드 디스틸러와 함께 경기 남양주시에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를 2020년 설립한 뒤, 2021년 1월 첫 제품으로 한국의 보태니컬을 사용한 싱글 몰트 진 ‘정원’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같은 해 9월엔 ‘기원 소사이어티 컬렉션'을 출시한 데 이어, 올 2월엔 기원의 정규 배치 1을 공개했다.

 

 

본 콘텐츠는 레스토랑, 음식, 여행 소식을 전하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바앤다이닝'과 식품외식경영이 제휴해 업로드 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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