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라이프] 미식, 그릇을 탐하다 ㅣ 레스토랑 편

특별한 그릇이 있는 레스토랑 7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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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의 요리를 말하기 바빴다. 유명 가이드에 실렸다느니 어떤 인플루언서가 다녀갔다느니 정도로 가볍진 않지만, 그래도 셰프의 조리법이나 식재료, 미적 감각과 페어링 실력 등이 레스토랑의 면모를 논할 때 다루는 소재였다.

하지만 감각의 경험이 자산인 레스토랑 업계에 새로운 반짝임이 일고 있다는 것을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모르지 않을 터. 바로 명품 브랜드 식기 사이에서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국내파 식기의 출현이다. 식기를 보면 그 식당의 진면목이 보인다.

 

그릇 없이 요리가 테이블에 오를 수 없는 법. 재료를 고르고 메뉴의 스토리를 짜듯, 신중히 고른 그릇은 테이블에서 또 다른 말을 걸어온다. 대가의 식기부터 힙하게 전통을 표현해내는 신진 작가의 그릇까지, 특별한 그릇이 있는 레스토랑을 찾아가 셰프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연을 닮다, 마음을 담다

더 그린테이블

 

공간 한편, 작은 테라스에서 키우는 형형색색의 꽃과 묘목들처럼, 모던 프렌치 레스토랑 <더 그린테이블>의 식탁에는 언제나 계절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시장과 농장을 오가며 다양한 한국 제철 식재료를 찾아나서는 김은희 셰프에게 그릇은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이 된다. 일반적으로는 화이트 색상의 플레이트를 선호하는 프렌치 요리지만, 셰프는 한국 식재료의 특성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방법으로 은은한 색감이 깃든 도자 그릇들을 선택했다.

 

“저에게 있어 플레이팅은 우리나라 자연을 그대로 옮겨 담는 과정인 것 같아요.” 한국의 제철 나물과 곡물, 신선한 채소들을 요리에 활용하다 보니, 자연을 닮은 듯 단아하고 차분한 성격의 도자기가 잘 어울린다고.

실제로 셰프가 자주 사용하고 아끼는 그릇들 또한 오묘한 파스텔 톤과 우아한 광택이 돋보이는 김남희 작가의 작품들이었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은은한 색감과 부드러운 질감, 단정한 형태를 가진 연녹색 에메랄드빛의 사발을 만져보면서 ‘<더 그린테이블>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그릇을 고르는 기준을 묻자 셰프는 물건을 보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느낌을 따른다고 답했다. 마치 자신이 요리할 때 순간적으로 집중하고 몰입해서 만들어내는 것처럼, 도예 작가들 또한 비슷한 창작의 과정을 거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릇은 음식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품어 주는 캔버스 같아요. 그렇다고 요리가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요”라고 말한다. 그가 표현한 ‘아름다움’ 속에는 외면의 화려함보다 맛에 대한 진심과 정성을 지키려는 엄격함이 묻어나 있었다. 결국 같은 엄격함을 지닌 그릇들이 셰프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아닐까.

 

It! ITEM_김남희 다완

옅은 파스텔 톤의 에메랄드 색상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듯 자연스러운 그러데이션이 돋보인다. 장식적인 요소는 최대한 덜어내고, 단정한 미감이 돋보이는 그릇으로 물성 자체의 단순함과 부드러운 질감이 특징이다.

 

  • 더 그린테이블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155길 13 2층

 

 

켜켜이 쌓인 시간의 결

밍글스

 

크기, 색채, 두께나 질감 등 비슷한 것 없이도 한데 모아 섞어놓으니 ‘밍글MINGLE’, 즉 ‘어우러지다’라는 단어가 더욱 와닿는다. 한식이라는 본질과 철학은 지키면서도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코리안 다이닝을 만들어나가는 <밍글스>.

 

몇 년 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강민구 셰프가 가장 신경 썼던 부분도 바로 그릇이었다. 오픈 초기만 하더라도, 국내 도예 작가들을 직접 찾아가거나 요리에 맞춰서 주문 제작을 했지만 관련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음식과 접시, 하나하나씩 매칭을 따지다 보니 오히려 코스 전체의 맥락을 봤을 때는 조화롭지 못했다. 새로운 식기를 고르는 일은 또 다른 미식을 탐구하 는 것과도 같았다.

 

“어떤 스타일의 레스토랑이든 음식과 공간 전체의 결에 맞는 식기가 중요하죠.” 셰프는 그릇이 총체적인 다이닝 경험을 아우르는 매개체와 같다고 말했다. 단순히 음식 하나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밍글스>의 콘셉트, 인테리어, 직원들의 성향과 서비스 방식 등이 연결되는 매개체라는 것. 듣고 보니 테이블에 모아둔 그릇에서만도 <밍글스>의 결이 느껴진다.

 

김선아 작가의 연리문 그릇이 대표적이다. 흙을 켜켜이 쌓고 압착한 후, 단면을 자르면 물결이 흐르는 듯한 유연한 패턴이 남게 되는데, 마치 <밍글스>의 배추선 요리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형태가 닮았다. 한식이 천천히 시간을 견디며 기다려야 하는 숙성의 미학을 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밍글스가 계속해서 변화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만큼 신진 도예가들의 그릇도 많이 사용하려고 해요.” 도예 작가의 개성과 젊은 감각이 반영된 그릇들이 최근 함께해서일까. 강민구 셰프는 부쩍 창의적인 시도와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메뉴를 매 시즌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또 우리에겐 ‘지금 이곳에서만 가능한’ 다이닝 경험이 하나 더 늘어간다.

 

It! ITEM_김선아 연리문 그릇

고려 시대부터 서역과 교류하며 대리석의 아름다움을 모방해서 만들기 시작했다는 ‘연리문’ 기법. 흙을 층층이 쌓아 압착시킨 후 단면을 잘라내서 독특한 결을 살린다. 김선아 도예가의 감각으로 새롭게 만들어낸 문양이 돋보인다.

 

 

  • 밍글스
  •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67길 19 힐탑빌딩 2층

 

 

백자를 수놓은 블루

보르고 한남

스테파노 디 살보 셰프의 이탤리언 다이닝 <보르고 한남>은 ‘마을’을 뜻하는 이름처럼 포근하고 정겹다. 큰 창으로 넘나드는 햇살과 밝은 벽면, 목재 가구, 푸근해 보이는 셰프, 그리고 그 셰프가 구성한 식기도 한몫한다.

 

 

곳곳에 놓인 ‘메이드 인 이탈리아’ 코퍼 팬과 몰드, 다양한 나무 플레이트, 그리고 이창화 도예가의 그릇은 색감이 자연스러우면서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탈리아제 기물과도 묘하게 어울리는 세라믹 그릇은 모두 이창화 도예가와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셰프가 싱가포르에서 지내던 시절, 한 갤러리에서 작가의 작품을 처음 발견했고 그 인연은 서울로 이어져 <보르고 한남> 오픈 준비 당시 작가에게 그릇을 맡겼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 세련된 형태와 매끄러운 질감이 마음에 들었어요.” 셰프는 약 10가지 그릇의 지름과 굽의 높이, 크기를 디자인했고 좋아하는 색깔인 파랑을 포인트 컬러로 요청했다.

여기에 도예가가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 넣은 결과 오직 <보르고 한남>만을 위한 컬렉션이 탄생한 것이다. 요리사의 구상과 아티스트의 특색이 어우러진 결과물에 대해 셰프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컬래버 레이션”이라며 자부심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외에 나무 식기도 종류가 다양한데, 대부분 양성필 공예가의 브랜드 ‘낭그루’ 제품이다. 제주도에서 주로 활동하는 작가는 농부 시장 마르쉐에서 알게 됐다. 그가 제주 바다에 떠내려온 폐목재로 만든 화병은 레스토랑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요리만큼 맛있는 이야기를 품은 <보르고 한남>의 식기 컬렉션은 궁극적으로 메뉴와의 조화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집에서 사용하는 그릇은 그저 아름다우면 되지만, 레스토랑의 그릇은 음식과 어울리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때로 멋진 그릇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스테파노 디 살보 셰프. 분야를 넘나드는 협업은 언제나 이뤄지고 있다.

 

It! ITEM_프루타 디 마르토라나 몰드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과자인 프루타 디 마르토라나FRUTTA DI MARTORANA를 찍어내는 틀. 과일이나 채소 모양의 종류가 다양하다. 셰프가 오래전부터 수집한 소장품으로, 여기에 디저트를 담아낸다.

 

  • 보르고한남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684-62 3층 보르고한남

 

맛과 공예의 하모니

일치

푸르른 이파리가 우거진 중정 사이로 빛과 공기가 넘나드는 곳. 차분하고 온화한 분위기가 감도는 컨템퍼러리 이탤리언 레스토랑 <일치>는 가구와 소품, 그릇, 커틀러리 등 공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그만의 감각으로 조화로웠다.

 

 

서로 어긋남 없이 하나의 균형을 이루겠다는 뜻의 상호처럼 말이다. 한국의 식자재를 십분 활용한 요리를 선보이는데, 전국 곳곳의 농장에서 제철 식재료를 직접 수급하거나 마르쉐 마켓에서 때마다 필요한 채소를 구입하는 ‘팜 투 테이블’을 실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좋은 식재료에 대한 고집은 이를 담는 그릇에서도 나타난다. 소재나 형태, 색감 등에서 존재감이 돋보이는 국내 작가들의 오브제가 테이블 위에 오른다.

 

“맛뿐만 아니라, 그릇과도 균형을 갖추려고 노력합니다.” 유승훈 헤드 셰프는 무엇보다 재료 특성과 잘 어우러지는 그릇과의 조합을 따진다. 예를 들면, 제철 한 입 거리와 같은 식전 메뉴는 주로 이헌정 작가의 백자 위에 올려낸다. 단순한 형태와 섬세한 미감으로 식재료의 색감과 특성을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크기나 디테일이 모두 달라 그릇의 개성도 묻히지 않는다.

 

 

디저트를 올려내는 곽경화 도예가 작품 ‘렛잇플로우LET IT FLOW’ 시리즈도 그렇다. 푸르른 색과 물결치는 패턴 등 다양한 형태를 그린 작품들은 흘러가는 바다의 물결을 표현한 것. 본래는 벽에 걸어서 전시하는 설치 작품이지만 유연한 드로잉 패턴이 디저트 모양과도 어울린다고 느껴 선택했다.

 

마지막 음식이 가장 인상적인 마무리가 되어주길 바라며, 셰프는 마치 한 폭의 작품을 담듯 요리를 낸다. “아무리 좋은 음식과 그릇이더라도 서로 어울리지 않으면 저희만의 요리를 표현할 수 없어요.” 셰프가 차리는 식탁에는 식재료부터 조리 기술, 플레이팅, 환대의 모든 노력이 일치하는 맛과 공예의 하모니가 펼쳐진다.

 

It! ITEM_곽경화 Let it flow

물처럼 흐르는 일상의 삶 속에서 느끼는 감각을 도판에 그려낸 곽경화 작가의 ‘Let it flow’ 시리즈. 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도록 구성한 작품으로 섬세한 색채와 반복적인 선, 다양한 형태의 도형 등으로 표현했다.

 

 

  • 일치
  • 서울특별시 강남구 언주로149길 8 지하 1층

 

 

본 콘텐츠는 레스토랑, 음식, 여행 소식을 전하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바앤다이닝'과 식품외식경영이 제휴해 업로드 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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