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종주국 하면 흔히 프랑스를 떠올리지만, 와인 원조국을 꼽으라면 단연 이탈리아다.
국가명도 ‘와인의 땅’이라는 뜻의 에노트리아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이탈리아는 유럽에 와인 문화를 전파한 로마 시절부터 현재까지 2천 종이 넘는 토착 포도 품종을 보존해 재배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 국토에서 저마다의 특색을 지닌 와인을 빚고 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 와인의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가 지난달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탈리아무역공사가 진행한 와인 프로모션 ‘비바 일 비노’가 그것. 한식부터 컨템퍼러리, 이탤리언까지 다양한 퀴진과 찰떡궁합으로 조화를 이뤘던 이탈리아 와인의 진면모를 소개했다.
이탈리아 와인 양조의 역사는 기원전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인이 야생 포도로 와인을 처음 빚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후 기원전 800년경 지금의 토스카나 지방으로 이주해 포도를 직접 심으며 본격적인 인류 와인 양조사가 시작됐다.
‘원조’라는 명성에 비해 이탈리아 와인의 우수성이 세계에 알려진 것은 비교적 늦은 1960년대다. 이전까지는 정치적 상황, 와인 산업에 대한 자부심 등 복합적인 이유로 정부 차원의 통제나 지원, 홍보가 부족했다.
그러나 1963년 와인 등급제인 DOC 법을 제정한 후 적극적인 품질 관리와 해외 마케팅이 전개되면서 프랑스에 가려졌던 이탈리아 와인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슈퍼 토스칸의 등장으로 세계에 눈도장을 한 번 더 찍은 이탈리아는 명실상부 세계 1, 2위를 다투는 와인 대국으로 우뚝 섰다.
이탈리아 와인의 키워드를 하나만 뽑으라면 ‘다양성’이다.
구대륙 어느 지역보다 토착 포도 품종이 다양하고, 최근에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품종을 복원해 양조하는 작업이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진다. 길게 뻗은 국토 속 테루아도 산악 지형부터 화산 지대까지 천차만별이다. 이탈리아 와인의 페어링 스펙트럼이 넓은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전 세계 생산량 1위인 이탈리아 와인 중에선 어떤 요리든 그에 어울리는 짝을 찾게 될 것.
한식도 예외는 아니다. 발효 풍미를 품은 한식, 채소 위주의 한식, 매콤한 킥이 있는 한식까지, 무궁무진한 이탈리아 와인의 선택지 중 마음껏 선택할 수 있다. 지중해성 기후로 완성된 높은 산미도 요리와의 뛰어난 궁합을 이루는 데 한몫한다. 이번 비바 일비노 행사에 참여한 업장들에서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제철 생선과 가죽 아로마의 이색적인 마리아주, <이스트>
압구정 로데오길에 위치한 아시안 컨템퍼러리 레스토랑으로 한국 식재료에 유러피언 조리 테크닉으로 완성한 메뉴를 코스로 선보이는 곳이다. 업장명은 이곳의 오너인 조영동 셰프의 이름과 동쪽을 뜻하는 ‘동녘 동’을 결합해 지었으며, 요리에 동양적인 터치를 반영하겠다는 셰프의 의지가 뚜렷하다.
산미가 뛰어난 이탈리아 와인과 페어링할 대표 메뉴 ‘고추장과 코코넛 레몬그라스를 발라 구운 병어’ 는 제철 생선인 병어에 고추장과 인디언 스파이스를 배합한 글레이즈를 발라 숯불에 구워낸 후, 소테한 시금치, 절인 레몬, 산초장아찌를 곁들여 완성한 메뉴다.
매칭할 와인은 피에몬테 지역 트라발리니 와이너리의 ‘코스테 델라 세시아’. 스파이시한 생선 요리와 붉은 과일의 새콤한 산미가 어우러져 이색적인 마리아주를 즐길 수 있다.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와인답게 가죽 아로마의 짭짤한 풍미가 매력적이며, 탄탄한 타닌의 맛은 가을의 석양을 연상시킨다. 셰프는 생선에 화이트와인을 페어링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과실미가 특징인 이탈리아 레드와인을 곁들여보길 적극 추천한다고.
- 이스트
- 서울특별시 강남구 언주로170길 26-6 3층
홈메이드 파스타와 복숭아 미네랄의 케미, <보르고 한남>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스테파노 디 살보 셰프, 그의 각별한 이탈리아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다이닝이다. 한남동 카페거리에 위치한 미쉐린 레스토랑으로 이번 행사에서는 시그너처 메뉴인 ‘탈리올리니’를 선보였다.
제주 딱새우와 생선, 랍스터, 관자를 푹 끓인 라구 소스에 직접 반죽한 파스타 생면을 넣어 조리한 해당 메뉴는 알토 아디제 지역 아빠지아 디노바첼라 와이너리의 화이트와인 ‘아빠지아 디 노바첼라 케르너’와 좋은 궁합을 보여준다.
특유의 은은한 복숭아 향과 백포도의 미네랄감이 해산물 요리와 페어링했을 때 과실미가 돋보이고 목 넘김이 한층 부드러워지며 12℃로 시원하게 칠링하여 마시면 기분 좋은 플로럴 노트를 만끽할 수있다. 셰프가 직접 페어링을 추천하는 와인 리스트는 오직 이탈리아 와인으로만 구성됐다는 점도 이곳만의 특징. 셰프는 앞으로도 이탈리아 요리와 와인으로 한국에서 친근하고 정겨운 이탈리아 식문화를 알릴 계획이라고.
- 보르고한남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54길 31 3층 보르고한남
페코리노와 생면 카펠리니의 조화로운 만남, <도우룸>
서래마을에 위치한 생면 파스타 전문점 <도우룸>의 시그너처 '오징어 먹물 카펠리니'는 국내 버터 베이스 생면 파스타의 시조 격이라 할 수 있는 메뉴다.
오징어 먹물을 넣어 반죽한 카펠리니 생면에 마늘 버터 소스와 흰다리새우를 구워 올린 파스타로, 버터의 고소함이 얇은 생면에 스며들어 크리미하면서 새우와 마늘의 조화가 깊은 풍미를 이끌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페어링할 와인은 아브루초 지역 페우디 바잔티니 와이너리의 '파소피노 페코리노'로, 양들이 와서 따 먹을 만큼 맛 좋은 포도를 뜻하는 이탈리아 토착 품종 페코리노 단일 품종만을 숙성시켜 만든 화이트와인이다. 은은한 레몬빛을 띠는 와인은 복숭아와 살구 같은 핵과일류의 과실미, 감귤류의 시트러스한 산미까지 머금어 버터 베이스 파스타와 곁들였을 때 입안을 산뜻하게 마무리한다.
<도우룸>은 이탈리아의 다양한 토착 품종을 보다 폭넓게 선보이겠다는 마음으로 추후 기존 와인 리스트에서 이탈리아 와인 수를 대폭 늘림과 동시에 페어링하기 좋은 메뉴도 활발히 개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도우룸
- 서울특별시 서초구 동광로 99 2층 도우룸 레스토랑
캄파니아 와인과 메찌 파케리의 스모키한 맛, <오스테리아 안나>
20년 경력의 나폴리 출신 셰프가 운영하는 정통 이탤리언 레스토랑으로 현지의 맛을 그대로 살린 이탤리언 퀴진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업장명은 이곳의 오너인 비아지오 아프레아 셰프의 모친 이름과 작은 식당을 뜻하는 ‘오스테리아’를 결합하여 작명했으며, 손님에게 ‘엄마의 마음’으로 요리를 대접하겠다는 셰프의 의지를 담았다.
대표 메뉴인 블랙 생트러플을 갈아 올린 라구 파스타 ‘메찌 파케리 알라 제노베제’는 파케리 면에 오소부코(소 정강이살)을 6시간 삶아 완성한 소스를 듬뿍 올린 메뉴다. 달짝지근한 불고기 풍미의 요리로, 캄파니아 지역 페우디 와이너리의 ‘라크리마 크리스티 로쏘’와 좋은 마리아주를 이룬다.
이탈리아 토착 품종 알리아니코와 피에디로소, 샤시노조 등 3가지를 블렌딩한 와인은 부드러운 목 넘김을 자랑하며, 스모키하고 농축된 열매 맛이 특징으로 조리 과정에서 물을 일절 넣지 않은 ‘메찌 파케리 알라 제노베제’와 페어링했을 때 과실의 풍미가 배가된다.
- 오스테리아안나
- 서울특별시 용산구 녹사평대로 210-7 3, 4층
정통 이탤리언과 비노의 듀엣, <일무레또>
가로수길 인근 골목에 위치한 다이닝으로 정통 이탤리언 요리를 가정집 분위기에서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탈리아인은 돌담(무레또) 앞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편안한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업장명으로 지었다고.
20년 경력의 프란체스코 길라르디 셰프가 신선한 생면 파스타, 스테이크 등을 이탈리아 와인과 페어링하여 선보이고 있다. 시그너처 메뉴는 ‘탈리아텔레 알 라구 에 타르투포 네로’, 한국어로 번역하면 라구 소스와 검은 트러플 파스타다.
라구 소스는 부드럽고 풍미가 좋은 한우 가슴살과 어깨살을 저온에서 12시간 동안 천천히 익히고, 허브와 토마토소스를 더한다. 블랙 트러플과 파르미지아노 치즈를 올려 풍미를 더하면 완성. 함께 매칭한 북부 베로나 지역 마시 와이너리의 ‘코스타세라 아마로네’ 2016년은 토착 적포도 품종 4종을 블렌딩한 와인이다. 코르비나는 구조감을, 론디넬라는 우아함을, 몰리나라는 산미를 각각 표현하고 있다.
자두 등 잘 익은 검은 과실 향속에 복합미가 살아 있어 라구 소스와 잘 어우러지며, 흙과 허브의 은은한 뉘앙스가 트러플과 조화를 이룬다. 이외에도 이탈리아 각 지역 50여 종의 와인이 준비돼 있다.
- 일무레또
- 서울 강남구 논현로157길 33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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