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쯤이면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하기 위한 노·사 간의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최저임금을 올리려는 노동계와 이를 막기 위한 경영계의 신경전이 극에 달하고, 이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각종 커뮤니티와 여론이 뒤숭숭해진다.
최저임금은 근로자들에게는 삶의 질과 직결되는 예민한 문제이고, 경영자들에게는 경영 자금과 회사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때문에 논란과 조정은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다. 다만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최저임금 인상이 과연 긍정적인가?’하는 근본적이 의문이 쌓여가고 있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어느 때보다 민감해진 최저임금 문제
지난 1일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 위원과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 위원은 최저임금위원회 제4차 전원회의에서 각각 지난해보다 16.4% 인상된 1만원과 2.1% 삭감된 8,410원을 최초 제시했다. 금액 차이는 1,590원이다. 노·사 모두가 코로나19 사태가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인식하고 있지만, 최초 제시액을 보면 결국 여느 해와 큰 차이가 없다.
노동계는 지난 2015년부터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해 왔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은 근로자들의 실생활이 가능한 수준에서 결정한 것이며,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는 것을 늘 근거로 내세운다.
이로 인해 최저임금은 문재인 정부에 들어 2017년 16.4%, 2018년 10.9%로 급격하게 올랐다. 작년에도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 입장을 고수했다. 그리고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들의 상황을 알지만, 그럼에도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에 반해 경영계는 지난해 4.2% 삭감안을 제시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이 상당했기에 나온 삭감안이었다. 경영계가 매년 삭감안을 들고 나왔느냐? 그건 아니다. 최저임금 삭감안이 나온 건 지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5.8% 삭감을 내놓은 이후 작년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심한 타격을 입은 올해 2.1% 삭감안을 내놓았다.
최저임금은 노·사 양측의 최초 제시액에서 수차례 수정안을 내면서 간극을 좁히고, 최종안에 대해 근로자(9명), 사용자(9명), 공익위원(9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 27명 전원의 표결을 거쳐 이뤄지게 된다.
지난해에도 최초에는 노동계 1만원 경영계 8,000원에서 1차 수정안으로 노동계는 9570원, 경영계는 8185원을 제시했다. 이어 최종안에서 노동계 8,880원, 경영계 8,590원으로 입장이 좁혀졌고, 표결에서 경영계가 내놓은 8,590원이 올해 최저임금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번 달 13일까지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주일 정도 시간이 남은 셈이다. 다음년도 최저임금은 전년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에서 정해 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이의제기, 재심의를 거쳐 매년 8월 5일 고용부 장관이 고시하게끔 돼 있다. 절차를 밟는 시간을 생각하면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 시간이 넉넉지 않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노동계의 요구가 단지 ‘최저임금 1만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1일 최저임금위원회 4차 전원회의 전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갖기로 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 협약’도 경영상의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명문화하지 않았다며 거부했다.
최저임금 1만원 관철과 경영상 이유로 직원 해고 금지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입장이 알려지면서 외식 프랜차이즈와 소상공인 업계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프랜차이즈업계를 비롯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은 생존의 한계상황에 서 있다.
여기에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해고금지 명문화는 결국 기업에게 문을 닫으라는 말과 같다. 소상공인 쪽은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에게 무조건 시급 1만 원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라는 노동계의 주장은 직원을 줄이거나 사업을 접으라는 이야기다.
중소기업 경영진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도 모두 함께 살아가는 국민이다. 누군가를 고용했다고 해서 정부의 대출과 지원금으로 연명하며 버티는 이들에게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최저임금 부담을 안기는 것은 옳은 정책 방향이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보다는 고용유지가 중요하다
자신의 급여가 늘어나는 것을 싫어할 노동자는 없다. 아르바이트생부터 대기업 사원에 이르기까지 최저임금이 올라 월급이 늘어나는데 누가 큰 목소리로 반대를 하겠는가?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자신이 해고 당한다면 그때도 과연 최저임금 인상을 두둔할 수 있을까?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등 10여 개 중소기업 단체들은 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로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일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최소한 동결해 달라고 촉구했다.
중소기업 단체들에 따르면 최근 3년간 32.8% 인상된 최저임금을 못 주는 사업장이 16.5%에 달한다. 음식점 등 소상공인 업종은 최저임금 지급을 하지 못하는 비율이 40%가 넘는다. 이들은 최저임금이 동결되면 중소기업계도 근로자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추가적으로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회원사 6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내년 최저임금이 인상된다면 신규채용 축소 44%, 감원 14% 등 대상 기업의 절반 이상이 고용축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응답했다. 중소기업이 이럴진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렇다면 근로자들의 입장은 어떨까?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서 중소기업 근로자 중 51.7%가 ‘내년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응답자 중 83.5%가 최저임금 인상보다 시급한 것으로 ’고용유지‘를 꼽았다. 조사에 오차가 있다고 해도 절반정도의 근로자들은 최저임금 인상보다 그나마 있던 일자리조차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지난 퇴직급여 개정안’ 관련 칼럼을 통해,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정책이 궁극적으로 지켜져야 할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줄이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저임금 인상 역시 이와 맥을 같이한다. 노동자들의 삶을 위해 최저임금을 차츰 인상시켜 가야할 필요성은 있으나, 상황을 고려하고 정확하고 합리적인 적용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와 대출 규제 등 점차 경영을 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기계적으로 인상되는 최저임금은 경영악화로 이어진다. 가파른 인건비 상승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최악의 경기에 휴업을 하거나 직원을 감원하고 알바 채용을 줄이며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는 것이 요즈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모습이다.
여기에 또다시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인상된다면 감당할 여력이 없다. 최근 경영주나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보다 최저임금, 퇴지금이 더 무섭다’는 이야기를 한다. 대출과 보증 만기 연장이 끝나는 9월이 되면 과연 우리나의 경제가 어떻게 될지 어떤 전문가도 장담을 하기 힘들다. 그런 와중에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과 경영 악화에 따른 해고를 금지하길 요구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더 큰 도약을 위해 잠시 물러나 협력할 수는 없는가?
식품외식업계 역시 이러한 최저임금에 큰 타격을 받는 업종이다. 올해 연말까지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는다면 경영주 73%가 폐업을 하거나 업종 전환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기약이 없어진 시점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중소기업은 물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더 이상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는 극한 상황으로 내모는 것이다. 올해 최저임금 8,590원도 버거워 인력을 줄이고 있는 판에 현재 노동계가 주장하는 큰 폭의 인상은 팽팽하게 당겨진 줄다리기의 줄 자체를 끊어지게 만들 수 있다.
최저임금 1만원이 초기 협상을 위한 노림수였다고 해도 노동계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근로자, 노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고용안정을 최저임금 인상으로 흔드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더욱이 최저임금 1만원과 해고를 금지하는 조항을 함께 요구하는 것은 협상의 의지마저 의심케 만든다. 아무쪼록 노동계와 경영계의 현명한 조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