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PEOPLE|서울의 미식을 말하다, 정혜경 교수

오랜 식문화를 자랑하는 미식 국가들의 요리를 즐겨본 경험이 ‘교양’의 척도로 가늠될 때도 있었다. 아니,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K-푸드가 또 다른 한류를 이루는 지금, 한국, 나아가 수도 ‘서울’은 ‘요즘 어디가 맛있다더라’ 하는 주제만으로도 대화에 활기가 넘칠 만큼 흥미진진한 미식의 도시가 되었다.

 

그렇다면 서울의 미식은 무엇일까? 어떤 경쟁적 특징이 있을까? 일찍이 1996년 서울의 식문화를 조사해 책을 펴내고 이후로도 25년여간 한식에 대한 연구 활동을 활발히 지속해온 정혜경 교수에게 이 질문을 다시 던졌다.

 

한식 연구는 언제부터 했나?

한식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건 35세쯤부터다. 영양학을 전공하고 30대에 대학교수가 된 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한식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은 만들 줄 알아야 하지 않나. 그래서 ‘한국의맛 연구회’에서 요리연구가 故강인희 선생님께 1년 동안 조리도 배우고, 한식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쭉 공부했다. 그렇게 한식 이론을 비롯해 한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연구한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다 「서울의 음식문화」를 집필하게 되었나?

가장 먼저 썼던 책이다. 서울학연구소의 지원으로 우연한 계기에 쓰게 됐는데 지금도 그 책에 대한 애정이 크다. 그때 서울 음식을 만들고 있는 20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했다.

그분들을 통해 많은 걸 배웠고,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20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돌아가셨다. 당시 서울 음식의 맥을 잇고 있던 분들이다. 지금까지도 그분들과의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서울 음식의 특징을 짧게 설명한다면?

조선의 수도였던 서울은 조선 시대 6백 년의 전통이 살아 있는 도시다. 한 나라에서 가장 화려한 음식 문화는 로열 퀴진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조선의 궁중이 그러하다.

동시에 한국의 수도로서 가장 급격하게 현대화를 겪어 지금은 국제 도시가 되었다. 높은 빌딩과 궁이 함께 있는 풍경처럼 음식 또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다. 세계적으로 봐도 이런 도시가 흔하지 않다. 그러한 공존이 흥미로운 국제 미식 도시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서울 식문화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어떤게 있나?

‘서울 미래유산’ 생활문화 분야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오래된 식당 위주로 미래유산을 정하던 중 실체는 없지만 지켜야 할 무형 유산을 선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때 보존할 음식으로 ‘설렁탕’과 ‘장수막걸리’를 꼽았다. 근대 서울 서민이 즐겨 먹은 음식으로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다.

 

설렁탕은 소설 「운수 좋은 날」에 나온 것처럼 서민의 애환을 담고 있기도 하다. 2019년에는 서울의 고기 문화를 대표하는 너비아니와 서울 반가 음식의 조리법을 소개한 조자호 선생의 책 「조선 요리법」(1939년 출간)도 미래유산으로 정했다. 너비아니는 고구려 맥적으로부터 내려와 조선 시대 반가 조리서에도 소개된 전통 음식이다. 1950년대 이후로는 불에 굽는다는 의미로 불고기라고 사전에 올랐다.

 

연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어떤 변화를 느끼나?

첫 책을 쓸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한식에 관심이 없었다. 한식을 해서는 장사가 안 되니 호텔에서 한식당이 사라지고, 젊은 요리사들은 한식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서양식을 배운 요리사 들이 모던 한식을 한다. 결국 한식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지금은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도 나타나고, 한식의 세계화가 국가 정책이 되기도 했다. 요리사는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그 변화의 일선에서 체감할수 있었다. 지금은 서울이 세계인이 주목하는 미식 도시로 발돋움했다고 생각한다.

 

모던 한식처럼 음식의 국경이 흐려지면서 ‘이노베이티브 퀴진’이 늘고 있는데.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우리 전통을 지키면서 새로운 게 만들어지길 원하지만 음식에 정답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 우리가 다른 나라에 갔을 때 가장 먹고 싶은 건 퓨전 음식보다는 그 나라의 독특한 전통 음식일 것이다. 우리도 그런 게 있으니 지켰으면 좋겠다.

 

글로벌 미식 안내서인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이 올해로 5년째 발행된다. 해외 기반 시스템인데 아쉬운 부분은 없나?

생각 외로 한식 레스토랑이 많이 선정됐다. 미쉐린에서도 그 지역, 그 나라의 특색 있는 음식을 발전시키는 곳에 점수를 주는 것 같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한식이 꾸준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다. 궁중 음식 전문가가 아니지만 왕실 음식을 주제로 「조선 왕실의 밥상」이라는 책을 낸 것도 한식이 더 젊어지고 열려 있어야 할 것 같아서다. 우리가 유럽의 왕실 음식에 관심을 가지듯 서울에 오는 외국인은 궁중 음식에 관심이 크지 않을까.

 

 

책 「채소의 인문학」에서 한국인을 ‘나물 민족’이라 칭하며 다양한 채소 문화를 소개했다. 채소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조리법 3가지를 꼽는다면?

제일 중요한 건 삶아서 갖은 양념에 무치는 숙채법이다. 섬유소는 중요한 영양소지만 부족하기 쉽다. 많은 양의 채소를 한 번 삶으면 부피는 줄지만 섬유소의 양은 그대로다.

거기에 약이 된다 해서 ‘약념’으로 불린 마늘, 파 등을 넣고 무쳐 먹으니 최고의 건강 조리법이라할 수 있다. 또 김치나 장아찌와 같이 발효시켜 먹는 방법, 쌈 싸 먹는것 등이 있다. 쌈도 우리의 독특한 역사가 깃든 음식이다.

 

쌈 문화는 언제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나.

쌈 채소인 상추는 고려 시대 중국에도 유행한 기록이 있다. 고려 여성들이 원나라에 공녀로 가면서 ‘상치(상추)’ 문화를 가져갔다. 당시 고려 상치를 천금을 주고 사는 채소라 해서 천금채라 불렀다고 한다.

 

​나물의 좋은 점을 알지만 조리 과정이 복잡해 현대 생활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반조리 형태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듬는 과정을 생략하면 더 많은 사람이 섭취할 수 있을 것이다. 한식처럼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일을 여성에게 요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산업적으로도 진화해야 한다.

 

나물 문화를 해외에 알리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비빔밥이 나물 문화를 알리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여러 종류의 채소를 먹을 수 있어 외국인이 좋아하지 않나.

 

한식은 건강 측면을 강조하는 게 좋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사람들이 음식을 선택할 때 건강만 생각하지 않으므로 문화와 건강이 같이 가야 한다. ‘건강하다’, ‘영양이 우수하다’ 는 걸로는 해외 시장을 공략할 수 없다. 한식에 담긴 스토리와 맛, 건강 등을 총체적으로 소개해야 한다.

 

고기로 넘어가보자. 한국의 고기 문화는 어떤 경쟁력이 있을까?

서양에서 인기를 끌었던 불고기, 양념 치킨처럼 양념을 잘해서 먹는 문화는 세계인에게 매력적일 것이다. ‘코리안 바비큐’라 불리는 고기 구이는 요리가 되어 나오는 서양식과 달리 직접 불에 구워 그 자리에서 먹는다는 독특함이 있다. 외국인에게는 재미있지 않겠나. 또, 쌈을 싸서 먹는 등 채소를 곁들이는 식문화가 영양 면에서 건강에 도움이 된다.

 

 

고려대학교 ‘융합적으로 먹기’라는 세미나에 출강한다고. 어떤 내용인가?

‘먹거리 지속가능성 연구단’에서 8년째 함께 연구해온 고려대 사회학과의 김철규 교수가 개설한 강의다.

 

음식을 주제로 영양학, 농촌사회학, 식문화, 식량 문제 등 다양한 주제의 책 7권을 학생들과 함께 읽고 토론한다. 학생들이 여러 관점에서 먹거리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는 문화 부분을 맡아 「밥의 인문학」으로 특강을 하고, 요리 실습도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은 다양한 지역색이 모인 도시다. 그렇다면 서울의 식문화도 융합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좋은 표현이다. 전국 각지의 가장 좋은 식재료로 가장 좋은 음식을 만들어냈으니 서울은 그야말로 용광로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특색이 없다고도 할 수 있고 동시에 한국에서 가장 수준 높은 식문화를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간편식, 밀키트, 배달 등이 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보고 있나?

자연스러운 대세다. 간편식 등을 통해 사람들이 쉽게 한식을 먹을 수도 있고, 오히려 한식이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바쁜 세상이지만 사람들에게 한식에 대한 욕구는 여전히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인 욕구가 오히려 한식을 찾도록 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한식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예전에는 어떤 음식이 한식이냐 아니냐로 싸웠는데 지금은 자장면도 한식으로 받아들이는 시대다. 정통성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전통 한식을 기반으로 서로 융합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젊은 요리사들과도 공부한다고 들었다.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온지음>에서 한식의 장인을 기르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그래서 이곳의 젊은 요리사들과 2주에 한 번씩 모여 책을 읽고 토의를 한다.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방식보다는 각자 책을 읽어 온 뒤 발제, 토론하는 방법을 택했다. 마지막에는 모두 돌아가면서 말을 하도록 시킨다.

 

자기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교육 방식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계속하다 보니 발전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함께 공부해보면 이들도 음식은 요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요리사에게도 인문학 지식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듯하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많이 배운다.

 

앞으로의 연구 계획은?

올해 안에 개성 음식에 대한 책이 나올 것 같다. 서울 음식의 뿌리가 개성 음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고려 시대 전통이 조선으로 넘어왔으니 서울 음식 못지않게 중요하다. 발효 음식에 대한 책도 작업하고 있다.

김치, 장, 식초, 술, 그리고 젓갈과 식혜. 다섯 분야의 장인을 만나러 전국을 다니며 열심히 썼다. 한국의 대표적인 발효 식품을 인문학적으로 다루는 책이 될 것이다.
 

 

본 콘텐츠는 레스토랑, 음식, 여행 소식을 전하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바앤다이닝'과 식품외식경영이 제휴해 업로드 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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