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최근에도 강원 동해시와 경북 울진군에서 규모 4.0 전후의 지진이 연이어 발생했다. 자연재해과 함께 주목받는 것이 비상식량이다.
일본은 대규모 자연재해를 여러 차례 겪으며 집에 비축용 물, 음식, 생존 가방을 비치하는 이들이 많다. 재해 등에 대비하는 비상식량은 가스 등 조리시설이 없는 상태에서도 먹을 수 있어야 하며 저장 기간이 길어야한다.
일본 오니시(尾西)식품 주식회사는 알파미(米)를 사용해 각종 밥 종류의 비상식량을 제조하고 있다. 알파미란 쌀로 밥을 지은 후 급속 탈수해 수분을 5% 정도로 건조시킨 쌀이다. 이후 물을 부으면 밥이 된다.
해군 잠수함에서 시작된 ‘알파미’
오니시 식품의 창업자인 오니시 토시야스는 해군 잠수함 승무원 출신이다. 바닷속 오랜 잠수함 생활을 하며 식사는 칼로리 중심의 시시한 것들이었다.
그 당시 오니시 대표는 조리 과정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가공 식품을 궁리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오니시 식품의 출발이었다.
처음 개발한 것은 소화가 잘 되고 보존에 적합한 건조식품이다. 뜨거운 물을 부으면 떡이 되는 상품을 개발해 군용 식량으로 해군에 납품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군대에서 취사를 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밥 개발을 요청했다. 오니시 대표는 전분 연구의 권위자인 오사카 대학 산업 과학 연구소의 니쿠니 지로 박사와 함께 알파미 연구에 나섰다. 이를 위해 전분의 특성을 철저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쌀은 전분 특성상 취사를 하지 않는 한 그대로 먹을 수 없다. 물을 넣고 가열해야만 ‘알파화 전분’이 음식이 되는 것이다. 쌀에 포함된 ‘알파화 전분’은 그대로 방치하거나 냉장고에 넣어두면 노화돼 말라버리지만 전자레인지 등에 넣고 가열하면 다시 알파화한다.

이처럼 알파화 전분은 변화하기 쉽고, 매우 불안정한 성질을 띄고 있다. 오니시 대표와 니쿠니 지로 박사는 그 특성을 살려 밥을 건조시킨 후 뜨거운 물만 부으면 맛있는 밥이 되는 알파미 제품화에 성공했다.
이후 알파미는 군용 식량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환자를 위한 영양원으로 용도를 바꿔 납품됐다. 현재는 자연재해 대책용 비상 음식으로 전국 지자체에서 비축해두고 있다.
보존 기간 5년, 만드는 방법은 쉽게
오니시 식품은 현재 12종류의 알파미 제품을 갖추고 있다. 처음에는 백반과 찰밥 각 1종류였지만, 서서히 종류를 늘려갔다.
부패와 산화를 방지하는 밀폐성 높은 패키지를 사용하며, 안은 무산소 상태가 되도록 탈산 소제를 넣어 5년 저장할 수 있는 품질을 유지한다.
뜨거운 물이라면 15분, 그냥 물이라면 1시간을 붓고 기다려야 한다. 쌀의 쫀득쫀득한 식감이 살아나 갓 지은 상태의 맛이 그대로 남이 있는다.
알파미 제품에 토마토 주스, 콘 소메 스프도 넣을 수 있어 다양한 요리로 응용도 가능하다. 또한, 수분의 양이 정해져 있어 제조 시간 이상을 방치해도 밥이 물러지지 않는다.
배를 든든하게 해주는 비상식량 ‘찰밥’
열악한 환경에서도 밥을 먹고 기운을 낼 수 있도록 오니시사가 개발한 것이 비상식량 ‘찰밥’이다. 재해에 호사가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지만 찰밥은 아플 때 회복식으로 먹을 만큼 영양소가 풍부하다.
그것이 이후 병이 나았을 때나 축하할 일이 있을 경우 먹는 음식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찰밥은 소화가 천천히 돼 배를 오랫동안 든든하게 해주는 만큼 비상식량으로 제격이다.
오니시사의 '찰밥' 은 일본산 찹쌀만을 사용한다. 가방을 열면 숟가락과 소금, 탈산 소제가 들어 있다. 내용량은 110g이며, 밥이 완성되면 210g으로 불어난다.
주먹밥부터 빵까지 비상식량으로
알파미로 만든 주먹밥도 있다. ‘경량·소형·휴대성’에 더해 손을 더럽히지 않고 먹도록 만들어 위생에 신경썼다. 재해 현장에서는 오염된 손으로 음식을 먹으면 2차 감염을 유발할 수 있다.
밥 제품과 똑같이 안내선까지 뜨거운 물 또는 물을 붓는다. 표면의 스티커를 떼어내면 안내선이 보이도록 편리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봉투가 부풀어 주먹밥의 형태를 갖춘다.
안 주머니가 삼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어 포장지에 칼집을 내어 열면 손에 묻히는 일 없이 주먹밥을 먹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비상식량 비축량은 3일에서 1주일분을 추천한다. 단 하루 세끼를 모두 밥으로 먹으면 질릴 수 있어 빵, 과자 등 구성을 다양화했다.
이전까지 장기 보관이 가능한 빵이라면 통조림에 들어간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방과 당분을 상당량 함유해 장기 보존할 수 있도록 한 제품이 주류였다.
오니시사는 가능한 시중에서 먹는 것과 유사하도록 빵을 만들어 맛과 촉촉한 식감을 살렸다. 상온에서 3년간 보존이 가능하다. 쌀과자는 밀, 우유, 달걀 등 알레르기 유발 물질 27가지 품목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주로 가는 알파미
이제 비상식량은 특정 상황에 국한되지 않고 해외 여행자, 등산객의 휴대 식량으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고산에서는 기압의 저하와 함께 물의 끓는점이 떨어지기 때문에 평소와 똑같이 밥을 해도 쌀의 안까지 열이 전달되지 않아 맛있는 밥을 하기 힘들다. 알파미는 기압이 낮은 조건에서도 동일하게 밥을 지을 수 있다.

또한, 쓰레기를 가지고 돌아오는 것이 의무인 남극 월동대에서도 알파미 제품을 사용한다. 식사 후 발생하는 쓰레기는 봉투와 숟가락뿐이다.
특히 오니시사의 알파미 제품 ‘백반’, ‘찰밥’, ‘산채 팥밥’, ‘주먹밥 연어’, 4종류는 2007년 일본 최초 우주 식품으로 인정받았다. 우주비행사가 먹는 제품은 패키지만 다를 뿐 시중에서 판매하는 제품과 거의 동일하다.
일본에서 비상식량에 대해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95년 한신·이와지 대지진 때이다. 재해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식이 커지며 가정에서 비축하기 위해 구입하는 사람이 늘었다.
이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인터넷 구입 비율이 높아졌으며 최근에는 알레르기 물질 사용하지 않는 제품, 무슬림을 위한 할랄 푸드 요청이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