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 하나씩 찍어 나가듯 꾸준히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 2014년 자신의 첫 레스토랑을 청담동 지하에 오픈한지 2년 만에 지상 1층으로 올라오더니, 지난해부터는 서울의 지붕인 남산의 한 레스토랑에서 총괄 셰프를 겸하다가 이제 해외로 진출하는 남자.
바로 지난 7월 25일, 홍콩에 <한식구>를 오픈한 강민구 셰프의 이야기다.
<한식구>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한 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또는 ‘한식’과 강민‘구’의 만남.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해외 레스토랑의 오픈을 앞두고, 홍콩으로 떠나기 직전의 셰프를 <밍글스>에서 만났다.
브레이크 타임이었음에도, 그는 홍콩에서 선보일 새로운 칵테일 메뉴에 대해 스태프들과 논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출국하면 홍콩에서 2주 자가격리 후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다시 서울로 와서 2주 자가격리까지 총 6주 동안 <밍글스>주방을 비우는 셈이다.
해외 첫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것만큼이나 장기간 주방을 비우는 것도 <밍글스> 시작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어쩌면 셰프의 인생에서 가장 비범한 일정이 펼쳐지기 직전 일지도 모른다.
첫 해외 레스토랑 진출을 축하한다. 소감이 어떤가?
솔직히 마냥 설레는 상황은 아니다. 작년 12월부터 준비했는데, 올 초에 코로나19가 터지는 바람에 자주 오가지 못해서 계획대로 안 된 점이 많다. 지난 6월 <한식구>를 가오픈하여 현지 스태프들과 지속 적으로 소통하며 운영 중이고, 정식 오픈 전 막바지 점검을 위해 곧 홍콩으로 떠난다.
홍콩의 <한식구>, 어떤 곳인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식을 편안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망글스>가 한식에 기반을 둔 창작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라면, <한식구>는 클래식한 메뉴가 주를 이룬다.
김밥, 불고기, 바비큐, 도 토리묵 등의 메뉴가 80% 정도고, 나머지 20%는 밍글스 스타일이 가미된 모던한 메뉴들이다. 처음엔 단품과 코스를 모두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구상했는데, 현실적으로 내가 홍콩을 자주 오가기 힘든 상 황이다보니 단품 메뉴가 많아지면 제대로 관리가 안 될 것 같아 현재는 코스 위주로 하되, 단품을 추가하는 구성으로 생각 중이다.
<밍글스>스타일의 모던 한식이 아닌 클래식 한식을 내세운 이유는?
지난 15년간 요리사로서 꼭 도전해보고 싶었던 꿈이 해외에 한국의 식문화를 소개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한식구>를 통해 제대로 된 한식을 선보이겠다는 열망이 있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한식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밍글스>를 거쳐간 젊은 셰프들과 함께 메뉴를 개발하다 보니, 젊고 모던한 감각이 요리에 녹 아들 수밖에 없다.
아직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렵지만, 좀 더 운영하다 보면 <한식구>만의 캐릭터가 명확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나라 중 홍콩을 선택한 이유는?
아시아에서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은 지역은 홍콩,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이다.
이 중 홍콩은 거리가 가까워 내가 자주 오갈 수 있고, 미식 시장이 크고 다양하게 형성된 곳이다. 사람들이 외식에 쓰는 금액도 한국보다 높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선 하기 힘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에 맛볼 수 있는 한 식 메뉴가 다양하지만, 더 좋은 재료로 만든 메뉴는 가격이 그만큼 올라가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홍콩은 메뉴 가격이 대체적으로 한국보다 높게 형성되어 있어 파전, 빈대떡과 같은 일반적인 메뉴라도 좀 더 부가가치를 높여 중간 가격대로 선보여도 시장성이 있다.
가오픈 기간 반응은 어떤가?
코로나19 때문에 예약을 많이 못 받고 있긴 하지만, 벌써 8월까지 예약이 다 찼다. 한창 휴가 시즌인데, 평소 같으면 해외로 나가던 홍콩 사람들이 국내에 묶여 있다 보니 가까운 곳에 새로 오픈한 업장에 대한 관심이 높다. 덕분에 홍보나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못한 상황임에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무엇인가?
홍콩 사람들은 돼지와 닭을 자주 구워 먹는다. 이걸 바탕으로 ‘바비 큐 듀오’를 만들었다. 닭고기는 된장 양념을 하고, 돼지고기는 간장 양념에 재운 뒤, 각각 숯불에 구워서 각종 쌈 채소를 곁들인다. 가오픈 기간 동안 인기가 가장 높은 메뉴다.
<밍글스>의 닭 요리에서 차용한 ‘삼계 리소토’ 또한 반응이 좋았다.
삼계탕에 착안해, 인삼을 넣어 만든 리소토 위에 바삭바삭하게 튀긴 닭고기를 얹고 진한 닭 육수와 함께 내온다. 고기 요리뿐만 아니라 한식의 다양한 채소 요리의 매력도 보여주기 위해 김치, 장아찌를 포함한 제철 채소 절임류도 반 찬으로 선보인다. 한식에서 반찬은 조연이지만, 한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요리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전, 칵테일 메뉴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봤다. 어떤 칵테일인가?
전통주나 한국 식재료를 활용한 칵테일 메뉴도 선보일 예정이다. 대표적으로, 기존의 올드패션드에 장을 더한 ‘장패션드’가 있다. 된장 버터를 위스키에 가미한 칵테일이다. 오래 묵혀야 맛이 깊어지는 장이 ‘올드’라는 단어를 대체한 셈이다. 칵테일 개발은 <앨리스 청담>의 시니어 바텐더인 메이슨이 맡아줬다.
홍콩 <한식구>의 내부 인테리어
식재료 수급은 어렵지 않나?
홍콩은 수입이 비교적 개방되고 자유로운 곳이다. 고기나 유제품 빼고 해산물이나 채소류는 모두 한국에서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과일, 채소부터 장, 절임, 김치, 젓갈, 식초, 참기름까지 필 요한 식재료들을 한국에서 보내고 있다.
셰프들은 어떻게 이뤄졌나?
7, 8명의 셰프 중 3명이 한국인이다. 헤드 셰프는 <밍글스> 초창기에 함께한 이상근 셰프가 맡았다. 해외에서 오래 일해서 영어가 능통할 뿐만 아니라 한식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높아 맡은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
사실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내가 현장에서 직접 모든 것을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믿을 만한 스태프들을 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확한 가이드라인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으로 현장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는 비결이 궁금하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도전이었다. 더 다양한 다이닝 경험을 제공하고, 항상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에 변화에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늘 현장에서 의사결정이 필요한 일에 대해 바로 피드백을 줘 반영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종종 어려운 상황 이 닥쳐도 잘 극복할 수 있었다. 꾸준하게 배우고, 도전하고, 변화하려는 모습을 많은 분이 좋아해주는 것 같다.
올해로 오픈 7년 차인데, <밍글스>의 요리 스타일 변화는?
처음 오픈하고 2년간은 내가 해외에서 경험한 음식들을 국내 식재료를 활용해 내 스타일대로 변용한 요리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많은 분이 맛있다고 좋아해주셨지만, 이것이 나의 요리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밍글스>만의 색깔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식을 더 파고들었다. 조희숙 선생님의 한식 수업을 듣고, 사찰 음식을 배우러 정관 스님을 찾았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었으나 미처 몰랐던 것을 재발견하거나, 이미 알고 있던 것도 새롭게 표현하게 됐다.
추구하는 <밍글스>만의 색깔은 무엇인가?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누구나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곳. 가령 겉보기엔 매우 생소한 요리인데 맛은 한국적인 색채가 짙다거나, 익숙한 메뉴이지만 먹어보면 새로운 느낌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는 요리. 이것이 우리 만의 색깔이다.
간장, 된장, 액젓과 같은 한국 특유의 발효 양념을 섬세하게 활용한다.
발효 음식을 직접 담그기도 하는가?
장아찌는 대부분 직접 담그지만, 김치는 직접 담그지 않고 맛있는 제품을 골라 쓴다. 장은 형제 브랜드인 <마마리 마켓> 송하슬람 셰프의 고향 옥천에서 직접 담가 보내준 것을 쓴다.
바쁜 와중에 농장 방문도 자주 한다. 농장과 의 협업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신경을 쓸수록 더 맛있고 남다른 식재료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수확한 채소나 허브를 올리면, 현장에서 느낀 생동감이나 계절감을 요리에 더 잘 반영할 수 있다.
요즘 특히 관심이 가는 식재료는?
과일을 많이 쓴다. 우리 과일은 전 세계에 내놔도 밀리지 않는 식재료다. 포도, 복숭아. 자두, 멜론, 토마토 등을 특히 많이 활용하고, 홍콩에도 보낸다.
요리뿐 아니라 그릇이나, 실내 인테리어에도 공을 많이 들인다.
손님들에게 우리만의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어 테이블부터 인테리어 소품, 각종 그릇들까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밍글스>에 전시된 사진은 김희원 작가의 대표작 ‘누군가의 창’ 시리즈 중 하나다.
한국의 고궁, 고택을 찾아 그 인물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창을 촬영한 작품으로, 전통을 지키면서도 창의성과 현대성을 불어넣은 우리의 기조와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홍콩 <한식구>에도 그의 작품들을 전시해놨다. 그릇은 정소영의 식기장에서 연결해준 젊은 작가들이 우리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준 작품들이다.
한국에서 파인 다이닝이 나아가야 할 길은?
해외의 파인 다이닝과 비교하면 <밍글스>가 정말 파인 다이닝이 맞냐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일생에 한 번뿐인 다이닝을 선사하려면 아낌없이 투자해야 하는 데, 열에 한 번은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할 때 가 있다.
오너 셰프의 영원한 콤플렉스다. 하지만 우리가 열 배 비싼 참기름을 사용하고, 작가 들이 우리 가게를 위해 특별 제작한 그릇을 쓴다는 것을 1백 명 중에 1명이라도 알아준다면, 그리고 외국인이 <밍글스>에서 경험한 다이닝이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으로 남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한국에서 파인 다이닝을 운영하는 이유와 동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장사하는 사람이지만 사명감을 많이 느낀다.
※ 본 콘텐츠는 레스토랑, 음식, 여행 소식을 전하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바앤다이닝'과 식품외식경영이 제휴해 업로드 되는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