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종영한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백종원 대표가 수많은 외식 자영업자들을 만나서 강조했던 내용 중 하나가 메뉴 다운사이징이었다. 오죽하면 그는 “자녀는 많을수록 좋지만 메뉴는 적을수록 좋다”고 말할 정도로 메뉴 최소화를 자영업 생존의 키로 꼽았다.
그 필요성은 알면서도 막상 과감히 매장에서 메뉴를 빼는 결정을 하기란 쉽지 않다. 가뜩이나 매출도 적은데 메뉴를 줄이면 더 손님이 줄 것 같은 불안감이 앞선다.
수인분당선 서현역에 위치한 ‘서현순대’는 작년 8월 메뉴를 대폭 줄이며 순대 전문점으로 재탄생했다. 메뉴는 줄이고 매출은 상승시키며 반전을 이룬 서현순대의 이옥화 대표를 만나 메뉴 다운사이징 과정을 들어봤다.
외식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
1997년 IMF가 터지며 남편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상황에서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창업을 하게 됐다. 동업에 대한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동판교에 초벌구이 삼겹살 가게를 오픈했다. 지금처럼 판교 지역이 활성화된 시기는 아니었지만 장사는 꽤 잘된 편이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남편과 동업자의 성향이 정반대였는데 크게 문제였다. 서로의 생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지분을 정리하고 장사를 그만뒀다. 동업을 하지 말라는 지인들의 조언이 그제서야 이해가 되더라. 외식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들었다 경험한 첫 번째 실패였다.
실패를 경험하고 난 뒤라 다시 도전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취업을 하기에는 애매한 나이가 되다 보니 결국 창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창업아이템은 프랜차이즈 콩나물국밥 브랜드였다. 강남구 논현동에 가게를 열었는데 이번에는 직원 관리에서 문제가 터졌다.
경험이 없다 보니 직원에 휘둘리기 일쑤였다. 음식 맛을 책임지는 주방 실장이 다른 직원들과 매번 마찰을 일으켰다. 들어온 직원이 계속 그만두니 어쩔 수 없이 실장을 해고했고, 그 뒤로 맛이 흔들리면서 손님이 갈수록 줄었다.
신생 브랜드라 그런지 가맹점 관리도 제대로 지원받지 못했다. 월세 300만 원을 감당하기 힘들어 손해는 눈덩이처럼 계속 커져만 갔다. 결국 3년 정도 운영하며 보증금을 다 까먹고 가게를 정리했다. 두 번째 실패였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장사를 잘해보겠다고 마음먹은 후 2016년 지금 서현순대 자리에 있던 할매순대국 매장을 인수하며 다시 창업에 도전했다.
인수를 결정할 정도면 장사가 잘됐다는 뜻인데,
서현순대로 리뉴얼을 하게 된 배경은
두 번의 장사 경험이 있었지만 여전히 외식 경영, 마케팅은 전혀 모르는 초보 장사꾼과 다를 바 없었다. 처음에는 순대국 외에도 뼈해장국, 도가니탕, 족발, 보쌈 등 메뉴가 많았다. 또 24시간 영업 방식이라 직원이 빠지면 남편과 둘이서 꼼짝없이 매장을 지켜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비싼 임대료를 내면서 쉬는 날도 없이 고생하는데 왜 제자리 걸음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대로 외식업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신한은행에서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신한소호사관학교’에 참여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 년 전 김영갑 교수님의 온라인마케팅 과정을 들으며 장사꾼이 아닌 경영자로서 눈을 뜨게 됐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장사 잘되는 가게들을 벤치마킹 다니며 매장 리뉴얼 필요성이 더욱 확고 해졌다.
코로나로 영업시간 제한이 걸려 24시간 문을 열지 못하고, 메뉴가 많으니까 직원도 안 구해졌다. 설상가상 남편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며 하루빨리 리뉴얼을 서둘러야 하는 환경에 놓였다.
이전 매장과 비교하면 거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리뉴얼 과정을 설명해준다면
우선 가장 시급한 메뉴 다운사이징부터 들어갔다. 몇 차례 걸쳐 족발, 보쌈, 뼈해장국 메뉴를 빼고 최종적으로 순대국, 순대전골, 순대한접시, 오향편육 4가지로 정리했다. 메뉴 정리가 끝난 다음은 상호, 인테리어 순이었다.
손님에게 순대 전문점이라는 인식을 들도록 지역 이름을 넣은 ‘서현순대’로 상호를 바꾸고, 벽면에도 서현순대가 가진 음식 철학이 보이도록 사진을 교체했다.
마지막으로 간판을 포함한 외부 파사드를 바뀌며 새단장을 끝냈다. 두려워서 실행하지 못한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로 리뉴얼한 매장에 대한 손님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다.
메뉴 다운사이징의 포인트로 잡은 부분은 무엇인가
순대 전문점에 초점을 맞춰 메뉴 다운사이징을 진행한 만큼 손님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맛 보강, 플레이팅에 신경을 썼다. 서현순대국만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소와 돼지의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이다.
돼지뼈가 아닌 소잡뼈와 여러가지 야채로 육수를 준비해 깊으면서도 깔끔한 맛이 특징인 순대국이다. 또한, 밥도 구수한 누릉지향이 나는 수향미(화성시 특산품)로 지었다는 것을 강조해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쓴 전문점이라는 이미지를 전하려 했다.
어떻게 보면 국밥집에서 주메뉴만큼 중요한 것이 김치다. 손님에게 정성을 다하고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을 통해 약선명인명장 이경애 선생님에게 김치 담그는 비법을 전수 받았다. 매장 운영에 맞게 레시피를 조정 후 신선한 재료로 직접 담근 갓김치, 깍두기를 순대국과 함께 제공한다.
매콤한 맛의 매운 순대와 토종순대로 구성된 ‘순대한접시’, 잡냄새가 나지 않고 쫄깃한 식감의 ‘오향편육’ 두 가지 곁들임 메뉴가 나갈 때는 부추, 무김치를 접시에 함께 올려 맛은 물론 색감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순대전골도 지금의 플레이팅을 완성하기까지 재료를 수십 번 올리며 어떻게 놓아야 손님의 눈에 맛있게 보일지를 고민했다.
메뉴 다운사이징 후 체감하는 효과는 어떤 것들이 있나
메뉴를 줄이니 운영 효율성이 올라갔다. 주변으로 오피스텔, 병원이 위치한 상권이기 때문에 점심시간 식사를 하러 손님들이 몰린다. 순대국을 주문하면 5분 안에 제공해 피크타임 회전율을 끌어올렸다. 메뉴가 많으면 지금과 같은 효율성이 나오기 힘들었을 거다.
운영에 자신감이 붙자 장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휴무도 갖게 됐다. 그동안은 하루라도 장사를 쉬면 망하는 줄만 알았는데 지금은 매주 토요일은 정기적으로 쉬고 있다.
그리고 오후 3시부터 한 시간 반은 직원들이 쉴 수 있는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다. 브레이크 타임에 문을 닫고 식재료를 준비하는 가게들도 있지만 서현순대는 오롯이 직원의 쉼을 보장해준다.
처음에는 매장 문을 열어 두면 몇 손님이라도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휴식 시간을 가지며 업무 능률, 서비스 만족도가 올라가는 효과가 더 크다.
바쁜 와중에도 매일 블로그에 ‘감사일기’를 남긴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김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며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무슨 주제로 글을 써야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내 이야기를 써보자는 마음으로 감사일기를 적었다. 블로그에 매일 장사를 하며 느낀 감사한 감정을 남긴다.
물론 늘 감사한 일만 있지 않으나 힘든 와중에도 좋은 점만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쓰고 있다. 점심 식사 시간 주방 이모가 생선을 구워줬는데 나한테 제일 큰 생선을 준 것이 감사하다 적고,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부가세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도 감사함을 느낀다고 적는다.
감사일기를 본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을 원동력으로 지금은 하루도 쉬지 않고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
3전 4기 끝에 음식 장사꾼에서 외식 경영자로 태어났다.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
코로나로 장사가 안돼서 너무 힘들었다. 장사를 접을까 말까 고민하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결심한 리뉴얼이었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는데 손님들의 반응이 좋아 너무 다행이다. 매출을 올려 운영 안정화를 이루면 저처럼 정말 어렵게 외식업을 하는 분들을 돕고 싶다.
그리고 감사일기를 쓰며 책을 써보고 싶다는 또 다른 꿈도 생겼다. 10년 정도 기록을 남기다보면 이후 자녀에게 물려줄 책 한 권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끝으로 절박한 순간 늦은 시간에도 언제나 피드백을 주던 교수님, 선뜻 임대료를 내려준 건물 주인, 계속된 수정 작업에도 늘 정성을 다해준 고혜진 디자이너 등 서현순대가 탄생하기까지 도움을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