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브스코리아는 작년 데이터분석기업 TDI와 협업해 내비게이션 정보를 기반으로 <한식 핫 플레이스 Top 20>을 발표했다. 하나같이 전국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곳들이다. 이 사이에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보리굴비·간장게장 전문점 ‘강민주의 들밥’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강민주 대표는 인터뷰 중 “소식을 들었을 때 20년 넘게 인생을 바쳐가며 쏟아부은 노력을 인정해준 것만 같아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99년 처음 장사를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길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강 대표의 젊은 시절이 오롯이 담긴 ‘강민주의 들밥’ 성장이야기를 들어봤다.
손톱이 다 닳을 만큼 절실한 마음으로 일해
서울에서 이천으로 내려와 터를 잡으며 생계를 위해 선택한 것이 식당이었다. 수중의 가진 돈을 긁어모은 끝에 고깃집을 하다가 3년간 비어있던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터라 손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돈도 경험도 없이 시작했기에 모든 것을 부딪치며 터득해야 했다. 정말로 손톱이 닳도록 일했다. 장사를 하고 나서 3년간은 손톱을 깎을 일이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보냈다. 가게를 살리겠다는 절실한 마음 하나뿐이었다.”
보리밥에 각종 나물과 제육볶음, 편육 등을 판매하는 한정식집으로 문을 열었지만 인적이 드문 곳에 사람들이 찾아올 리 만무했다. 가끔 손님이라도 오면 와주는 것만으로 신기하고 감사해 식사를 무료로 대접했다.
느리지만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을 쏟으니 서서히 주변으로 입소문이 퍼져 나갔다. 또한, 인근에 위치한 골프장, 스키장 이용객을 손님으로 끌어들이고자 점심 장사가 끝나면 주차장으로 향했다. 직접 손으로 쓴 전단지와 떡, 요구르트를 함께 포장해 차에 걸어 두며 매장을 알렸다.
사장의 얼굴이 곧 브랜드다.
아침에 미용실 다녀와 한복 입고 손님 맞아
초창기 ‘강민주의 들밥’ 보리밥정식 가격은 5천 원이었다. 하지만 음식 가격이 저렴하다고 매장 이미지까지 똑같이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침 일찍 장사 준비를 마치면 항상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꾸미고, 단정히 한복을 입은 채 손님을 맞았다.
“사장 얼굴이 곧 브랜드다. 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사람이 어떻게 제공하는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찾아온 손님의 기억 속에 ‘강민주의 들밥’하면 격이 있는 향토요리음식점이란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발효 기술을 통한 냄새 없는 청국장, 신선한 채소를 즉석에서 무쳐 주는 방식 등 음식 맛과 서비스 요소가 맞물리며 문을 열고 두 달 째부터 손님이 몰려들었다. 이후 지역 맛집으로 자리 잡으며 방송 요청이 쇄도했고, 매장도 늘려 나갔다.
위기는 소리 없이 다가와...고객 관점에서 다시 시작
늘 잘될 거라 생각했지만 8년차부터 위기는 소리 없이 다가왔다. 3년에 걸쳐서 매출은 서서히 떨어졌다. 다른 매장을 동시에 운영하며 본점에 집중을 못한 탓이 컸다. 품질, 서비스가 흔들렸고 실망한 손님들이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주변으로 음식점 수도 늘어나며 경쟁도 치열해졌다.
“주변 경쟁환경, 고객의 수준은 바뀌었는데 그에 맞춰 대응을 하지 못했다. 결국 고객에게 강민주의 들밥은 가게, 메뉴, 주인 모두 늙었다는 이미지만 남은 것이다. 2년간 적자를 메꾸다가 최저 매출을 기록한 다음 날 바로 문을 닫았다.”
3개월에 걸쳐 리모델링하며 모든 것을 고객 관점에서 바꿨다. 인테리어는 물론 사용하는 그릇도 한정식에 어울리게 교체했다. 새단장을 마치자 점차 떠나간 고객들이 돌아왔고 돌솥밥·보리밥정식 두 가지 메뉴로만 월 1억원 매출을 올리며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기본을 넘어선 기준...전국 판매 1위
5년에 걸쳐 완성한 상상 속 보리굴비
메뉴 연구·개발은 강 대표가 쉬지 않고 꾸준히 했던 일 중 하나다. 요리책, 잡지를 스크랩해 레시피를 모아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지금도 200가지 요리는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익혔다. 메뉴를 개발할 때 중심에는 늘 고객을 뒀다. 강민주의 들밥 대표메뉴 보리굴비도 그렇게 탄생했다.
“보리굴비하면 기본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틀에 갇히지 않으려 했다. 고객 입장에서 보리굴비를 먹으며 느꼈던 불편함을 제거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출발은 그저 머릿속에 있는 상상 속 보리굴비였지만 기본이 무엇이든 간에 기본을 넘어선 기준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비린 맛을 제거하려 박카스에 굴비를 담가보는 등 온갖 시행착오를 겪었다. 대량으로 굴비를 말리고, 보관하니 개발 비용도 만만치가 않았다. 5년간 시도 끝에 찾은 것이 울금가루. 비린 맛 제거는 물론 보리굴비를 황금빛 빛깔로 물들여 시각적인 만족도를 높인다
여기에 먹음직스러운 플레이팅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고객에게 나갈 때는 마지막까지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 강 대표의 지론이다. 보리굴비를 완성한 후 1년에 걸쳐 전국의 보리굴비 맛집을 다 찾아가 맛을 본 끝에 전국 1등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직원은 나의 부족함 채워주는 동업자 같은 존재
외식업을 해오며 가장 투자를 아끼지 않는 건 직원에 대한 복지다. 상하관계가 아닌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동업자라 생각해 일하며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나 해결해주려 한다.
대표적으로 강민주의 들밥 주방에는 칼이 한 자루뿐이다. 주방 노동강도를 줄이고자 감자 깎는 기계, 채 써는 기계 등 각종 장비를 도입했다. 업무 난이도에 따라 보수도 확실하게 지불하니 내부에 일할 공간을 마련했음에도 겨울철 야외에서 고기 굽는 일을 직원이 자청해서 나선다.
“영업시간을 줄이고 필요 인력보다 직원을 더 여유 있게 편성한다.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고, 고객만족도도 당연히 떨어지게 된다. 여름에 집에서 에어컨을 틀고 싶어도 매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직원들을 떠올리니까 선뜻 틀지 못했다. 전 직원에게 에어컨을 선물해 준 뒤에야 마음이 놓여 틀 수가 있었다."
정성(精誠)이 전부다.
2020년 9월 코로나19 여파가 한창이던 때 식객 허영만 화백이 촬영을 위해 ‘강민주의 들밥’을 찾았다. 보리굴비, 간장게장을 맛본 허 화백은 “그간 먹어본 정식 중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 사이 손님 편이를 위한 변화도 있었다. 그릇을 전체 유기그릇으로 교체하고, 손님 대기실을 마련해 뻥튀기 등 군것질거리를 채웠다. 약한 화장실 물 수압을 보완하려 2천만 원을 들여 물탱크도 추가로 설치했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가 더해지며 코로나 시기에도 오히려 매출 성장이란 성과를 올렸다.
오전 11시 영업시작과 동시에 강민주의 들밥을 찾는 차량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이중에는 강민주 대표를 보러 찾아오는 오랜 단골도 많다. 테이블마다 다니며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는 것만큼은 바쁜 와중에도 강 대표가 꼭 챙기는 일이다.
“매출을 목표로 정하면 자꾸 얄팍한 방법으로 손님을 모으려 힘을 쏟게 된다. 그것보다 어떻게 하면 찾아온 고객이 재방문할지 고민하며 내실을 다지는 것이 장기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성공비결이라고 한다면 최고의 밥상을 위해 음식과 손님에 들인 정성이 전부이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도 이천을 대표하는 백년가게로 자리매김하도록 계속 변화해 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