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2일, 환경부는 식품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왔던 ‘제품의 포장 재질, 방법에 관한 기준에 관한 규칙(이하 재포장 금지법)’의 세부지침 재검토 일정과 시행 시기를 발표했다. 본래 7월 1일부터 시행 예정이었지만, 업계의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본격 시행을 내년 1월로 연기한 것이다.
정부가 규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시행 연기를 결정하니 업계 관계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정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식품외식관련 정책들에서 늘 거론되는 ‘업계의 상황도 고려하지 않은 성급한 정책’의 사례가 또 하나 추가된 것이 아니냐는 입장이 많다.
재포장 금지법, 정확히 무엇인가?
환경부가 발표한 재포장 금지 규제는 간단히 말해 ‘이미 생산 완료된 제품을 추가로 재포장 해서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1 형태의 재포장 묶음 판매가 금지된다는 것이다. 다만 공장에서 생산할 때부터 묶음 상태에 바코드가 찍혀 나오는 상품은 판매할 수 있다.
세부항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규모 점포 또는 면적이 33㎡ 이상인 매장이나 제품을 제조 또는 수입하는 자는 포장되어 생산된 제품을 다시 포장하여 제조, 수입, 판매하지 못한다. 환경부는 이를 통해 그간 제품 판촉을 위한 1+1, 묶음 등의 불필요한 재포장 사례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식품 외에 소형, 휴대용 전자제품에 대한 포장방법에 관한 기준을 처음으로 마련했다. 차량용 충전기, 케이블, 이어폰 및 헤드셋, 마우스, 근거리무선통신(블루투스) 스피커 등 5종의 전자제품 중 300g 이하의 휴대형 제품은 포장공간비율 35% 이하, 포장횟수 2차 이내의 포장기준을 준수하도록 제한했다.
그 밖에 단위제품 기준은 적용되나 종합제품 기준은 적용되지 않았던 완구, 문구, 의약외품류, 의류 등도 종합제품 기준 적용대상에 포함하여 제조, 판매 시 과도한 포장을 금지한다. 종합제품이란, 최소 판매단위 2개 이상의 제품을 포장한 것으로 이번 개선으로 새로이 추가된 제품 등은 포장공간비율 25% 이하, 포장횟수 2차 이내 포장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이러한 재포장 금지법은 갈수록 늘어나는 생활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 중인 정책이다. 환경부는 그 동안 2022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을 30% 감축하는 재활용 폐기물 종합대책(‘18.5)과 ’1회 용품 함께 줄이기 대책(‘19.11)’ 등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노력을 펼쳐왔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생활 폐기물의 약 35%를 차지하는 포장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이번 ‘재포장 금지법’이 시행 절차를 밟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연기된 해당 규제는 12월까지 계도 기간을 두고 내년 1월부터 본격 시행하며, 1월부터는 이를 위반하는 업체에 대해 위반 건당 300만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사실 필자는 환경부의 해당 정책을 지지한다. 재포장, 과대포장 등 포장 폐기물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반드시 줄여야 하는 것이고, 더 이상 미뤄서도 안 되는 사안이다. 때문에 환경부의 이런 적극적인 움직임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환경부가 지난 1월 29일 개정, 공포한 이래로 여러 차례 업계와 소통을 거쳤음에도, 이러한 논란이 벌어지도록 만든 것에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좀 더 신중하게 논의하고, 오해의 소지를 최소화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실무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유예기간 등을 초기부터 제시했다면 좋은 정책의 취지가 논란으로 인해 가려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돌을 던지기 전, 개구리의 입장도 생각해야
‘재포장 금지법’ 논란을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은 ‘업체의 마케팅 수단을 정부가 규제한다는 비판’과 ‘묶음 할인을 규제한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보도’의 영향이 컸다. 이미 완성된 제품을 재포장해 판촉하는 행위를 규제한다는 것이, 라면 묶음 판매 같은 ‘묶음 할인 자체를 규제’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와전됐다.
해당 정책이 시행되면 1+1, 묶음 할인이 사라져 업체들의 마케팅 수단이 줄고, 소비자들이 비싼 가격에 상품을 구매하게 될 것이라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이런 보도는 곧바로 소비자들의 비판으로 이어졌다.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꽤나 속이 쓰린 상황이었을 것이다.
환경부는 곧바로 2020년 6월 19일자 한국경제의 보도를 대상으로 설명 자료를 배포했다. 해당 자료에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며 정부는 할인을 규제하는 것이 아닌, 불필요한 재포장을 규제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미 돌아선 여론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환경부의 이 같은 해명은 팩트다. 환경부가 지난 20일 제공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1+1 행사 상품의 경우 따로 포장하지 말고 안내를 통해 동일 제품을 하나 더 가져 오게 하거나, 테이프 형태의 띠지를 활용해 판촉하면 된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내용들이 언론 및 대중에서 뒤 늦게 소개됐다는 점이다.
또한 업계 관계자들과의 소통에서도 잡음이 많았다. 이는 명확한 기준과 시행 방법을 정하지 못한 상태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면서 생긴 문제였다. 시중의 수많은 제품과 포장 형태 중 어떤 것이 재포장에 해당하는지도 애매했고, 업체의 크기에 따라 차별이 일어나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는 항목 등도 모두 논란의 뗄감이 됐다.
영세업체들의 이해 부족과 포장업체의 실무적인 기간을 고려하지 않은 시행 추진도 논란을 더했다. 포장업체 관계자는 당장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따라 환경오염이 덜한 포장제를 개발했는데, 이제는 포장을 하지 말라하니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탄했다.
재포장을 통한 묶음 판매나 덤 마케팅이 제조사보다 유통사에서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혼란을 야기한다. 규제가 시행된 후 재포장 묶음 판매가 적발됐을 경우, 유통사가 책임을 지는지 제조사가 책임을 지는지 그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서 환경부는 낱개 단위제품을 가격할인 없이 묶음으로 구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제조사와 유통사 간의 책임 전가를 방지하기 위해 양벌 규정을 원칙으로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부의 모호한 정책에 답답하던 업계 관계자들의 분통을 터트리는 한 마디였다.
이러한 공무원들의 대처도 식품, 포장업계 관계자들의 화를 돋웠다. 지난 18일 식품산업협회에서 열린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와 업계 간 회의에서 한 공업사무관은 ‘재포장 금지법’에 대한 업계의 우려에 ‘처음 만들 때 잘 만들면 될 것 아니냐’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편집증 적으로 보일 정도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을 던져줘도 모자랄 판에, 이런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정부 측 대표자에게 업계에서 좋은 반응을 보일 리 없다. 좋은 취지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왜 이런 제 살을 까먹는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정부의 이번 재포장 금지법이 장난으로 던진 돌은 아니겠으나, 너무 성급히 돌을 던지다 보니 수많은 개구리들이 놀라버린 꼴이 됐다. 모두가 사는 연못을 깨끗하게 만들자는 취지의 정책이 개구리들의 반발을 사고, 결국 시행이 연기되는 모습을 보니 지켜보는 입장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번 재포장 금지법이 계도기간과 엄격한 보완을 거쳐 장난으로 던진 돌에 그치지 않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