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없는 불황이 예견된 상황 속에서도 필 꽃은 핀다.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가 처음으로 개최되는 등 글로벌 미식계가 주목하는 도시로 떠오른 서울에서 만개할 날을 기다리며 한 해 동안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운 곳들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2024년 한 해의 끝, 앞으로의 비상이 더욱 기대되는 레스토랑을 소개한다.
발효와 숙성으로 맛의 방점을 찍다
다이닝오은
바레인과 크로아티아 주재 한국대사관 등에서 총괄 셰프를 역임한 이선영 셰프가 발효와 숙성을 주제로 풀어낸 한식 파인 다이닝. 계절마다 달라 지는 식재료의 맛을 직접 빚은 그릇에 오롯이 담아 낸다.
더운 여름엔 다시마 숙성으로 풍부한 감칠 맛을 입은 농어에 신선한 잎채소를 매칭해 요리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누룩 소스 등으로 발효의 풍미를 더했다면, 겨울 메뉴는 견과류와 뿌리채소, 지방이 풍부한 육류를 중심으로 좀 더 묵직한 풍미를 담아낸다.
올겨울에는 전통 음식인 수란채에서 영감받아 화이트 아스파라거스와 마, 배, 문어와 더덕튀김에 마늘 소스와 잣 소스를 곁들인 ‘너울’ 을 선보인다. 꽃게 소스를 곁들인 난면 ‘합 盒’도 새로운 얼굴. 청양고추와 홍고추, 각종 채소를 더해 얼큰하게 끓여낸 꽃게탕 소스에 땅콩 호박 퓌레를 더해 매운맛을 중화했다. 부드럽게 중화된 매콤한 맛이 특징. 밀가루에 달걀노른자만 더해 뽑은 난면에 말린 호박고지와 겨자 장아찌로 한식에서 느 낄 수 있는 식감과 풍미를 곁들였다. 한식진흥원 근무 시절 익혔다는 선재스님의 비법 두부장과 삼베체 굴의 조합도 놓치기 아쉬운 맛이다.
“2025년에는 여러 분야와 교류하며 신선한 영감을 얻고, 우리만의 도자기 작업도 이어가고 싶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 있는 맛’이라는 본질을 지키는 것이다. 늘 되새기는 가장 큰 가치 이자 변치 않는 포부다.”
- 다이닝오은
- 서울특별시 서초구 강남대로85길 21-11 지하1층, 1층
고전을 변주하는 새로운 맛의 요람
꼴라쥬
줄곧 클래식 프렌치 퀴진의 길을 걸어온 노진성 셰프가 새롭고도 여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난 4월, 아난티 전담 셰프로 문을 연 <꼴라쥬>다.
오픈 당시 채소, 해산물, 육류 등 재료에 따라 구성한 코스에서 벗어나 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의 클래식한 3코스 구성으로 회귀했다. 기존 메뉴로는 와인 매칭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 하지만 업장의 출발점인 ‘창작 프렌치 요리’라는 키워드는 여전하다. 원물이 드러나 어떤 맛일지 가늠이 되는 요리에 만족하지 않고, 셰프의 시각을 백분 반영한 독창적인 메뉴도 꾸준히 라인업에 올리고 있다.
가리비, 크림, 달걀을 함께 갈아내고 스팀으로 익혀 만든 ‘가리비 판나코타와 파스닙 퓌레’는 프렌치 요리에 대한 셰프의 끊임없는 연구와 색다른 해석이 돋보이는 메뉴. 푸딩 같은 식감, 레몬 & 바닐라 오일과 파스닙 퓌레 시그너처 해산물 덕분에 디저트를 연상시키는 위트도 느낄 수 있다.
“대외적으로 더욱 좋은 평가를 받아 2025년에는 예약이 어려울 만큼 사랑받는 것이 목표이자 희망이다.”
- 꼴라쥬
-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로136길 11 지상2층
와쇼쿠라는 이름의 장인정신
산로
교토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기쿠노이>에 외국인 최초로 입문, 무라타 요시히로 셰프에게 사사해 한국인 최초로 부주방장까지 올라간 유성엽 셰프의 와쇼쿠 레스토랑. 지난 5월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5의 선공개 명단에도 오르면서 세간의 기대를 받고 있다.
<산로>는 그 기대에 부응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식재료의 맛은 물론 색감, 조리법, 요리를 담는 그릇까지 일본 고유의 식문화를 뜻하는 와쇼쿠 요리의 기본이 되는 다시의 퀄리티를 위해 오픈 전 수도 필터까지 맞춤 제작할 정도다.
찐 찹쌀 위에 비장탄으로 구운 복 곤이를 올린 ‘후구 이이무시’, 제주산 참조기를 숯불에 직화로 구운 뒤 밥 위에 올려 오이절임, 가지볶음 등의 반찬과 함께 내는 ‘참조기 솥밥’, 히레사케에서 모티프를 얻은 국물 요리 ‘후구 스이모노’까지 솔직하면서 정갈한 담음새로 테이블에 차려낸다.
음식이 품은 온기가 마지막까지 식지 않도록 고심한 그릇 하나하나에서도 셰프의 의도가 선연하게 드러난다. 그 진정성을 인정받아 일본 농림수산성으로부터 ‘일본식보급 친선대사’로 임명되고, ‘2025 라 리스트 1000’에서 장인정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산로’스러움을 갈고닦아 한국 미식 신 안에서 일본 요리 발전에 매진하겠다.”
- 산로
-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 518 2층
상큼한 향미로 말하는 스시의 품격
스시고킨
신라호텔 <아리아께>의 전성기를 열며 일명 ‘모 리아께’로 불린 모리타 마츠미 셰프의 첫 제자로 25년 동안 정통 스시의 길을 걸어온 유오균 셰프가 선보인 스시야. 제철 생선의 탱글하게 차오른 식감과 숙성으로 얻은 부드러움 사이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춘 네타와 그에 어우러지는 샤리의 감칠 맛, 그 위로 가볍게 흩뿌리는 전매특허 유자 제스 트는 여전히 인상적인 조합이다.
한국 스시야의 최고 격전지인 강남이 아닌 을지로 일대에 오픈했 지만, 단골손님을 비롯해 모리타 셰프와 함께 한시절을 풍미한 스타 셰프가 쥐어주는 스시 한 점 의 미감을 기대하며 모여든 손님들로 줄을 잇고 있다.
스시 전문 셰프인 ‘이타마에’로 남고자 하는게 삶의 목표이지만, 사심으로 만든 메뉴 ‘토마토 바질 우동’을 단골손님에게 내보이다가 정식 메뉴로 올리는가 하면, 키티, 짱구 등의 캐릭터 마카롱 으로 코스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클래식한 스시야 에서 보기 힘든 재미를 더하고 있다.
“완성도 높은 한 점의 스시를 내기 위해 지난 25년 동안 매달려왔다. 어제보다 조금씩 진일보하며 쌓은 공력이 지금을 만들었고, 앞으로를 만들 것이 다. 항상 기본에 충실하며 최선을 다하겠다.”
- 스시고킨
-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29 더존을지타워 지하1층
뉴욕을 접수하고 돌아온 K-갈비 대장주
윤해운대갈비
한국으로 역수입된 뉴욕 출신 한국 갈빗집이 있다. 부산을 대표하는 맛, <해운대암소갈비집>의 3대손인 윤주성 대표가 2017년 뉴욕 맨해튼에 오픈한 <윤 해운대갈비>다. 부산의 헤리티지를 간직한 채 또 다른 양상으로 꽃피운 뉴욕의 갈비 문화를 들고 돌아왔다.
뉴욕에서는 한국의 전통주와 이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을 주류 메뉴의 중심으 로, 서울시에서는 뉴요커가 한식을 즐기는 라이프 스타일을 그대로 와인 리스트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점이다.
공간은 신세계백화점과 JW 메리어트 호텔 사이, 새로운 미식 플랫폼인 하우스 오브 신 세계에 자리한 만큼 세련된 무드를 주는 동시에 지하 동굴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연출했는데, 오픈 이후 6개월간 조금씩 조도와 음악을 조절하며 손님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부산에서 뉴욕, 다시 서울시로 진출한 대표 메뉴 ‘생갈비’와 ‘양념갈 비’는 물론, 윤주성 대표가 직접 개발한 감칠맛 폭탄의 ‘성게 명란 비빔밥’, 한국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새롭게 갖춘 점심 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고객의 기억 속에 단순히 ‘그 집 고기 맛있었지’라는 수준에서 멈추기보다,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보낸 그 ‘집’으로 기억되도록 노력하겠다.”
- 윤해운대갈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 서울특별시 서초구 신반포로 176 하우스오브 신세계 1층
시간을 녹여 선보이는 한 그릇의 요리
플럭스
<플럭스>는 장진모 셰프의 새로운 도전이자 꿈을 담은 이노베이티브 퀴진이다. 발효와 숙성을 테마로 맛을 내는 작업은 비단 한국뿐 아니라 다양한 글로벌 국가에서도 등장하는 조리 형태지만, 셰프의 작업은 좀 더 남다르다. 누룩과 젖산, 백곡균 외에도 무수한 균종의 곰팡이를 활용해 이곳을 대표할 ‘오리지널 균종’ 을 만들기 위해 도전해왔기 때문이다. 드레싱을 만들기 위해 보리 발효부터 시작하는 사람.
대표 요리 ‘어선’에서 그 결과를 맛볼 수 있다. 능성어, 새우, 관자, 깻잎, 상큼한 레몬 제스트를 배합한 무스를 깔고 완자 형태로 동그랗게 빚은 생선 무스를 올린 요리다. 누룩 소금, 볏집, 밀랍에 숙성해 오븐에 구운 메추리에 곁들 이는 가니시 하나에도 시간의 흐름이 배어 있다.
5년 숙성한 매실액과 비트주스를 배합해 구운 비트가 그것. 참고로 메추리 요리는 조만간 메뉴에서 제외될 수있으니 맛보고 싶다면 미리 체크해두길 권한다. 메추리 요리 자체가 국내에서 매우 드물지만, 장진모 셰프의 메추리는 더욱 희소한 기억을 남겨줄 것이다. 한창 숙성 중이라는 오리고기도 기대해봄 직하다.
“누룩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고, 발효라는 게 늘 내 맘 같지 않다. 그런 와중에 이번 소식이 큰 선물을 받은 듯 무척 감사하다. 내년에도 더욱 열심히 도전하겠다.”
- 플럭스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162길 12 3층
[화제의맛] 2024년을 빛낸 뉴페이스 레스토랑-2편으로 이어집니다.
본 콘텐츠는 레스토랑, 음식, 여행 소식을 전하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바앤다이닝'과 식품외식경영이 제휴해 업로드 되는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