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오늘] 스페셜티 커피의 가치 평가

커피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은 뭘까. 그간 일률적인 기준으로 다뤄온 스페셜티 커피 평가의 틀이 이제는 각 지역의 고유한 식문화와 개개인의 커피 취향까지 반영하며 바뀌어가고 있다.

 

커피의 역사는 커피 가치 평가의 역사

 

지구상에서 커피의 거래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커피 값을 효과적으로 책정할 방법을 고민해왔다. 전 세계 커피 전문가들은 품질 좋은 커피를 보증하기 위한 평가 시스템을 만들기도 했다. 1984년,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of American(이하 SCAA)는 그 일환으로 책 「커피 커퍼스 핸드북 Coffee Cupper’s Handbook」을 발간했다.

 

이 책은 경험과 실습에 기반하던 당시 커피 기술에 감각 연구 Sensory Science를 적용해 물리화학 기반의 과학으로 전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이론을 기반으로 1990년대에는 아로마, 맛 등 커피 향미의 스펙트럼을 나타낸 ‘커피 플레이버 휠 Coffee Flavor Wheel’이 만들어졌고, 2000년대가 지나면서 정확한 평가를 위한 양식까지 완성됐다. 커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툴과 프로토콜이 갖춰진 것이다. 이후 전 세계 전문가들이 이를 기반으로 커피의 향미를 평가했다.

새로운 버전의 Flavor Wheel

 

전 세계 커피인들이 하나의 시트를 기준으로 커피를 평가하면서 빠르게 피드백을 주고받았고, 효율적인 품질 판단과 거래 결정으로 이어졌다. 좋은 평가를 받은 커피는 시장에서 인정받으며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그런데 과연 여러 사람이 하나의 커피 샘플에 매긴 점수가 일률적일 수 있을까.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계속되는 반복 훈련과 점수의 평균값을 내는 방식으로 객관성을 보완해왔다. 안전장치를 갖춘 평가 시스템으로 커피 샘플 평가를 거치고 나면,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궁극적으로는 객관성 있는 평가라는 믿음이 생긴다. 하지만 여전히 오류가 하나 있다.

 

‘좋지 못한 커피’의 평가 기준이 커피 거래에 주력해온 유럽과 미국 기준에서 비롯되었을 확률이 크다는 점이다. 2017년, 유럽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E,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of Europe)와 SCAA가 통합되어 ‘스페셜티 커피 협회(이하 SCA)’로 출범한 이후 전 세계 커피인들의 소통이 활발해지며 현 시스템의 한계를 깨달았다. 문화권마다 선호하는 커피의 향미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 또 커피를 평가하는 목적이나 환경에 따라 편차가 있다는 사실이다.

 

2020년 SCA는 커핑 시스템에 대한 업계 인식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온라인 조사와 면담을 통해 이 평가 방식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지를 설문했다. 조사 결과, 시스템은 커피 업계 공용어 형성에 크게 기여했고, 구매자 및 생산자 간의 조율, 국제적인 커피 평가 기준을 표준화하는 데 효과적인 반면, 소비자에게 커피의 속성을 명확히 전달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비슷한 평가를 받은 커피 샘플은 소비자 입장에서 그 차별성을 분별하기 어려웠던 것. 기술적인 한계점도 보였다. 단맛에 대한 세부 항목이 부족하거나, 평가자가 커핑한 샘플에 취향에 따라 주관적인 가산점을 주는 오버올 Overall 항목이 단순히 점수를 높이기 위해 사용된다는 문제도 보였다. 평가를 객관화하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졌지만, 평가자 본인의 경험과 선호도 차이에 따라 편차를 보였다. 특히나 문화 차이로 인한 선호도를 반영할 수 없다는 결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 시스템은 객관적인가’라는 질문에는 약 58%의 참여자만이 ‘예’라고 답변하며 객관성에 대한 논란을 남겼다.

 

새로운 커피 평가 시스템이 등장하다

 

SCA는 시스템의 오류를 인정하고 문화 차이에 따른 선호도와 주관적 평가를 시스템에 도입하기로 했다.

협회는 평가지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기존 커핑 폼에 있던 항목을 직관적인 표현으로 바꾸고, 세분화했다. 보디 Body는 촉감 Mouthfeel으로, 오버올 Overall은 복합성 Complexity으로 변경했다. 기존 폼에서는 모두 섞여 있던 객관적 기술 영역과 주관식 기술 영역을 분리해 평가지를 수정했다. 새로 탄생한 시스템이 CVA(Coffee Value Assessment)다.

 

CVA는 외재적 속성과 내재적 속성으로 크게 두 섹션의 평가가 존재한다. 외재적 속성은 커피의 정보, 이를테면 유기농 인증 유무나 컵 오브 엑설런스 Cup of Excellence 같은 수상 경력 등을 포함해 가공 방식, 품종 등을 정리한 것이다. 내재적 속성은 평가자가 작성하는 항목으로, 정동 평가 Affective Assessment 와 묘사 평가 Descriptive Assessment, 형태와 로스팅 정도를 육안으로 체크하는 물리적 평가 총 3가지로 나뉜다.

 

정동 평가는 개인 또는 집단의 주관적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 목표다.

보통 평가 기준이라 함은 개인의 경험과 편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반면, 일부러 주관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기존 시스템에서는 적용되지 않던 다양한 관점과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다. 묘사 평가는 객관적 평가에 해당한다.

 

묘사 평가 결과만큼은 한 샘플에 대한 평가자들의 점수가 유사해야 한다. 평가지에는 여러 플레이버 노트가 나열되어 있다. 해당 커피 샘플에서 발현되었다고 생각하는 향미에 체크하고, 각 항목에 대한 강도를 제외하면 점수를 표기하는 파트는 없다. 이후 묘사 평가와 정동 평가에서 얻은 점수를 종합하는 방식이다. 이전에 비해 꽤나 복잡하고 어려운 방식이다.

 

이 변화의 의의는 단순히 몇몇 오류를 해결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CVA의 존재 의미는 커피를 재배하는 사람, 구매자 등 커피 체인의 모든 관계자가 스페셜티 커피가 만들어내는 가치에 더 형평성 있게 접근하고, 그 가치가 어떻게 정해지는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무엇보다 이 변화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단순히 특정 커피의 좋고 나쁨을 운운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식문화에 따라 가치 평가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세분화함으로써 고유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현재 만연해 있는 특정 커피에 대한 무조건적인 선호도는 점차 희미해지고 각 지역에서 나타나는 커피 평가는 개성을 띨 것이다. 전 세계에 종사하는 스페셜티 커피 산업 관계자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커피 산업은 하나의 큰 산을 넘어가고 있다.


*자료 출처 「Understanding and Evolving the SCA Coffee Value Assessment System」,「커피 센서리와 커핑 핸드북」, www.sca.coffee


박근하 커피헌터

 

20년 경력의 바리스타다. <프릳츠커피 컴퍼니>의 공동 대표. 2014년 동료들과 함께 마포구에 <프릳츠커피> 1호점을 오픈하였고 같은 해 한국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로 세계 바리스타 대회에 참가했다. 주로 스페셜티 커피의 산지를 방문해 생두를 선별하는 일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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