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TRAVELㅣ날마다 새로운 도시, 강릉의 맛

험준한 태백산맥과 남빛 바다를 양쪽으로 두른 땅, 강릉. 빽빽한 삼림부터 굽이진 계곡, 동쪽으로 흐르는 하천까지 두루 품은 이곳은 서울에서 차로 두세 시간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여행지다.

 

잘 알려진 만큼, 이 도시가 너무 익숙해서 지루한 관광지로 느껴진다면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볼 일이다.

 

 

산과 바다라는 천혜의 자연, 오랜 세월 형성된 고유한 지역 문화에 새로이 뿌리내리기 시작한 이들이 참신한 기운을 불어넣으면서 오늘날 강릉은 오묘한 매력과 신선한 의미가 더해진 도시로 거듭났기 때문.

 

구전돼온 향토 요리 수호자와 새로운 미식을 펼쳐나가는 개척자가 공존하며 강릉의 내일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이제 이 땅에서 익어가는 또 하나의 볼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셰프가 풀어내는 유러피언 요리부터 초당순두부로 빚어낸 파스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노포의 반건조 대구찜까지, 강릉의 맛은 점점 넓어지고 깊어진다.

 

part 1. 강릉에 도착한 젊은 맛집

 

로컬 재료로 펼치는 유럽의 맛

미트컬쳐

 

 

이보다 더 명료한 상호가 있을까. <미트컬쳐> 는 말 그대로 고기를 활용한 다채로운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다. 다만 ‘고기’에는 물고기까지 포함된다는 사실.

이탈리아 알라시오나 프랑스 니스처럼 해변 도시에 있을 법한 미트 & 피시 펍 스타일로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지만, 요리에 임하는 최종원 오너 셰프의 태도에는 날이 서 있다.

 

노르딕 퀴진이 세계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하던 2012년, 스웨덴으로 건너간 셰프는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F12>를 거쳐 같은 계열의 <스막(SMAK)>에서 수셰프로 일하며 새로운 요리와 문화를 흡수했다.

이러한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가 이곳 요리의 아이덴티티인 셈. 스웨덴식으로 담근 파프리카, 레드어니언 피클, 오이 피클과 사과의 조합으로 만든 커리 레물라드(RÉMOULADE)를 더한 ‘피쉬 타코’, 소고기와 돼지고기에 북유럽에서 흔히 먹는 주니퍼베리를 넣고 반죽해 거친 맛을 살린 ‘스웨디시 미트볼’은 그 터치를 분명히 느낄 수 있는 메뉴다.

 

요리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느냐고 묻자, “누가 보아도 제대로 된 요리를 내놓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화려하거나 거창하지는 않아도 기본은 확실히 갖춘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영국 오리지널리티를 살린 ‘피쉬앤칩스’를 맥주 반죽으로 튀기고 으깬 콩(MUSHY PEAS)과 직접 만든 타르타르 소스를 곁들여 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메인 요리인 스테이크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건 당연지사. ‘살팀보카’와 ‘뉴욕스트립’은 안정적인 퀄리티와 숙성도가 보장된 블랙앵거스 채끝을 통째로 받아 직접 손질해 준비하는데, 마리네이드나 밑간 없이 오로지 소금과 후추로 조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살팀보카는 프로슈토와 세이지 잎을 얹어 정통 이탈리아 방식으로 제공하며, 뉴욕스트립에는 겨자씨 피클을 넣어 빚은 허브 컴파운드 버터 소스를 사용해 복합적인 맛을 가미했다.

 

 

주문진과 양양의 수산시장에서 그날그날 가장 좋은 생선을 들여오고 브로콜리와 파프리카등 각종 채소는 강원도에서 자란 것을 사용하는 셰프의 모습에서 고향 강릉에 대한 애정과 진정한 로컬 요리사의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

 

손님 테이블에 올리기 직전까지 최적의 요리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서비스 테이블에 오버 헤드 워머(OVERHEAD WARMER)를 설치하는 열정, 로컬 브루어리인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병맥주 4종은 물론 와인과 칵테일, 부담 없는 소주까지 갖춘 호방함까지 모두 눈여겨볼 것.

 

“세계로 나가 최고를 경험하고 많은 걸 배운 뒤 고향으로 돌아온 만큼, 좋은 재료와 탄탄한 실력으로 최상의 요리를 보여주려 합니다”라고 또렷하게 말하는 셰프의 눈에서 강릉 미식의 내일이 비치는 듯하다.

 

  • 미트컬쳐
  • 강원도 강릉시 경강로 2629 1층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기쁨

오엘이프

 

 

짙푸른 바다와 끝없이 부서지는 포말…. 해변 중심으로 관광지구가 형성돼 있어 강릉 하면 이러한 바다 풍경부터 떠올리는 이가 많겠지만, 이 도시를 말할 때 산을 빼놓을 수는 없다.

 

강릉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꾸려가는 크고 작은 마을을 대관령이 감싸고 있기 때문. 그중 구정면은 대관령 기슭에 자리한 평화로운 농촌 마을이다. 프렌치를 기반으로 단정한 요리를 선보이는 <오엘이프(5L2F)>는 바로 그 한적함을 추구해 구정면에 자리 잡았다.

 

‘오병이어(FIVE LOAVES AND TWO FISHES)’의 머리글자를 따온 상호는 ‘간결한 메뉴로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요리’라는 콘셉트를 반영한 것.

르 코르동 블루 시카고에서 프렌치 요리를 전공한 이승규 셰프는 프렌치를 기본으로 하되, 보다 많은 이가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일까 늘 고민해왔다.

 

정통 ‘까르보나라’에서 페코리노 치즈 양을 줄이고 레지아노 치즈와 잘게 썬부추를 더해 산뜻하게 완성한 것이 대표적 예. 한층 깊은 맛을 위해 셰프가 직접 5일간 염지한 항정살을 3주 냉장 숙성해 만든 관찰레(GUANCIALE)를 까르보나라의 주재료로 사용한다.

 

 

또한 오래전부터 갈빗살을 좋아했다는 셰프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이 부위를 입안 가득 씹어 먹고 싶었던 바람을 요리로 풀어냈다.

고기 본연의 풍미가 살아 있으면서도 덩치가 큰 미국산 프라임 등급 소고기를 수급해 갈빗살만을 발라내어 스테이크로 내고 있는 것.

 

충분히 익어야 진가를 발휘하는 갈빗살 특성에 맞춰 굽기 정도의 조절에도 정성을 다한다. 바삭하면서도 촉촉한 식감의 알감자 가니시는 균일하게 칼집을 낸 뒤, 삶고 튀기고 얼리고 다시 튀기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함께 내어주는 홀그레인 머스터드와 컴파운드 버터 하나까지 일일이 만드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이승규 셰프와 김재경 대표 부부가 취향을 담뿍 담아 꾸민 공간 역시 싱그러운 컬러가 돋보이는 요리와 잘 어우러진다. 알록달록한 스페인식 타일을 한 조각 한 조각 붙여 만든 테이블부터 전 세계를 여행하며 모은 접시로 꾸민 벽면까지 부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이 없다고.

 

손님이 느긋하게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이들의 작은 소망은 맛있는 요리를 꾸준히 내놓고 싶다는 것. “양식을 낯설어하던 근처 주민이 또 맛보러 찾아와줄 때 기쁘죠”라고 담담히 말하는 셰프는 메뉴를 자주 바꾸기보다는 퀄리티를 높이는 일에 집중하고자 한다. 요리를 기억하는 손님이 언제 찾든 그 요리를 선사하고 싶기 때문 이라고.

 

  • 오엘이프
  •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구정중앙로 242

 

음악이 있는 강릉 속 미국

리틀다이너

 

 

황량한 도로에 우두커니 선 대중식당의 모습, 미국 로드 무비 계열 영화에 곧잘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처럼 자동차 여행자를 대상으로 간단한 요기를 제공하는 미국의 식당 형태를 ‘다이너(DINER)’라 일컫는데, 강릉에도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식당이 있다.

 

강릉의 조용한 도로변에 자리 잡았지만 늘 문전성시를 이루는 <리틀 다이너>가 그 주인공. 홍대에서 밴드 음악을 했던 김정은, 유연민 부부는 오랜 시간 즐겨온 미국 문화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2년 전 다이너 콘셉트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강릉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바다를 좋아하거든요”라는 소박한 대답이 돌아왔다. 북적이는 서울 생활에 지친 부부에게 자연이 가까운 강릉은 그 자체로도 무척 매력적이었지만, 낯선 요리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도시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고.

 

패스트푸드의 대명사로 여기는 미국 요리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리틀다이너>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따끈한 한 접시를 내놓는 ‘슬로 푸드’ 스타일을 택했다.

직접 개발한 ‘팬케이크버거’의 번으로 사용하는 플러피(FLUFFY) 팬케이크는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머랭을 쳐 반죽하는데, 폭신하고 몽글몽글한 질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다.

 

패티 역시 풍미가 뛰어나다고 정평이 난 미국산 우목심을 매일 갈아 빚으며, 육즙을 보존 하기 위해 미리 시즈닝하지 않고 조리 과정에서 일일이 간을 맞춘다고. 볼로네제, 칠리 등 육류 베이스 소스를 두루 사용하는 만큼 고기 손질에도 각별히 신경 쓰고 있는데, 민스(MINCE)를 따로 받지 않고 소고기를 통째로 받아 직접 손질하는 것도 노력의 일부다. 신선하고 안전한 요리를 최우선으로 여기기 때문.

 

 

레드를 인테리어 메인 컬러로 사용해 꾸민 실내에는 부부의 시간과 노력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실내 페인팅부터 네온사인과 소품 제작등 인테리어 작업을 직접 해냈는데, 오히려 그 덕에 유행을 타지 않는 독창적인 스타일의 공간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커트 코베인(KURT COBAIN) 포스터와 오래된 엘피(LP), 피아노와 베이스 등 취향이 묻은 오브제 배치부터 날마다 분위기에 따라 플레이리스트를 짜는 일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다는 부부의 바람은 단 하나, 오래오래 이 자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것. “그러려면 늘 맛있는 요리를 내어드려야겠죠?”라며 웃는 그들은 오늘도 따뜻한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

 

 

본 콘텐츠는 레스토랑, 음식, 여행 소식을 전하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바앤다이닝'과 식품외식경영이 제휴해 업로드 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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