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으로 막혔던 일본으로 가는 하늘길이 지난해 9월 무비자 개인 여행까지 전면 개방되고 엔저 효과까지 가세하면서 일본을 찾는 한국인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12월 방일 외국인 여행객 3명 중 1명이 한국인이었을 정도다.
가까운 나라 일본이그 어느 때보다 궁금한 요즘, 미식 칼럼니스트 시푸미 에토가 올해 주목할 일본 미식 트렌드를 전한다.
2023년 일본 미식 시장에 대한 트렌드 전망을 준비하면서 6가지 키워드를 마주했다. 그 속에서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전통이나 지방의 매력에 가치를 부여하고 문화로서 계승하는 것의 중요성, 그리고 요리사 본연의 자세인 ‘사람을 대접하는 따뜻한 마음’과 ‘요리로 사람을 건강하게 하는 마음’의 진정성, 끝으로 레스토랑은 사람과 문화가 교류하는 따뜻한 장소라는 점이다.
팬데믹 기간을 지나 엔데믹을 맞은 2023년은 트렌드에 좌우되지 않는 레스토랑이나 요리의 본질을 다시 한번 검토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세계의 스타 셰프 일본 상륙
2021년에는 홍콩의 <벨롱 BELON >을 아시아 톱 레스토랑으로 이끈 셰프 대니얼 캘버트가 포시즌스 호텔 도쿄 앳 마루노우치로 이적, 호텔의 메인 레스토랑인 <세잔 SEZANNE >을 오픈한 지 반년 만에 「미쉐린 가이드 도쿄 2022」의 1스타(현재는 2스타)로 이끌었다.
2022년에는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2022’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현재 세계 미식계가 주목하는 페루 리마의 레스토랑 <센트럴L>의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 셰프가 도쿄에 <마즈 MAZ >를 오픈했다. 팬데믹으로 국가를 넘나드는 이동이 어려운 기간이 길었음에도 세계적인 스타 셰프들의 일본 진출이 이어진 만큼 2023년에는 그 열기가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누구도 세계 톱 레스토랑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노마>가 교토에서 여는 팝업 레스토랑 <노마 교토>가 대표적으로 그 포문을 열었다.
오는 3월 15일부터 5월 20일까지 약 10주간 에이스 호텔 교토 에서 개최되는 이 행사를 위해 <노마>의 르네 레드제피 셰프를 필두로 하는 팀과 그의 가족 90명 이상이 이미 교토에 도착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셰프와 언론인, 미식가 등이 이곳을 예약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는 후문이다.
또한 올여름 이후에는, 프랑스 망통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미라쥐르>의 마우로 콜라그레코 셰프가 도쿄 중심부에 레스토랑을 오픈할 예정으로, 업장명은 아직 미정이나 가칭 <사이클 CYCLE >로 불리고 있다.
2019년 말 ‘쿡 재팬 프로젝트 COOK JAPAN PROJECT ’의 참가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일본 식재료를 접한 마우로 셰프의 레스토랑 오픈 소식은 벌써부터 일본 미식가들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로컬 가스트로노미 신시대
오너 셰프 고바야시 간지가 이끄는 와카야마 이와데의 <빌라 아이다>, 오너 셰프 다니구치 에이지I 가도야마 도가무라에서 운영하는 <레보 L'EVO >는 일본 데스티네이션 레스토랑의 투톱으로 꼽히는 레스토랑이다.
일본 내에서 ‘로컬 가스트로노미’라는 개념을 뿌리내리며 가스트로노미 투어리즘을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에 이어 개성 있는 데스티네이션 레스토랑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 2022년 10월에는 홋카이도 도카치 지방에서 지비에(사냥으로 잡은 야생 금수의 식용 고기), 양 등 육류 요리를 선보이는 <엘레조 ELEZO >가 <엘리조 에스프리 ELEZO ESPRIT >를 오픈했다.
2023년 6월에는 오이타 유후인에서 티베트인 츠드히 기암초 셰프가 이끄는 팜투테이블 오베르주 <보태니컬 리트리트 에노와>가 문을 열 예정이다.
또 도쿄 도심에서도 교통이 편한 다치카와 지역에 하루 네 커플만 머물 수 있는 온천 숙소 ‘오베르주 도키토’가 올해 오픈을 예고하고 있다.
세계를 따뜻하게 하는 커뮤니케이션 푸드
일본 요리사는 자원봉사 등 사회공헌에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는 선입견을 버리게 해줄 활동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세계 평화를 위해, 어려운 사람을 위해, 요리사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음식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잇따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나마에 시노부 셰프가 운영하는 스타 레스토랑 <레페르베상스>와 <브리콜라주 브레드앤코>가 대표적. 일찍이 지속가능성을 위한 활동을 펼쳐왔는데, 밸런타인데이 기간, 셰프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디너처럼 특별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크라이나 지원이나 터키 시리아 대지진 지원 사업을 하는 ‘월드 센트럴 키친 WORLD CENTRAL KITCHEN ’을 위한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나리사와>의 오너 셰프 나리사와 요시히로도 마찬가지. <와규마피아>의 하마다 히사토 셰프와 함께 #onigiriforUKRAINE라고 명명한 자선 활동을 전개해 세대와 국경을 초월하는 많은 지원자를 불러 모았다. 이런 교류가 앞으로 크게 확산되기를 기대해본다.
클래식 프렌치로의 회귀
세계적으로 이노베이티브 요리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일본에는 프랑스 요리가 도입·확산되던 시대의 셰프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그 문화를 계승하고자 하는, 이른바 클래식 프렌치의 재평가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와카야마의 ‘호텔 드 요시로’에서 오랜 세월 주방장을 맡으며 고전 요리를 선보여온 데시마 준야 셰프가 도쿄의 <셰 이노 CHEZ INNO > 레스토랑으로 이적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고객층이 레스토랑을 방문하며 클래식 프렌치의 대표 격인 셰프의 요리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만다린 오리엔탈 도쿄의 메인 레스토랑 <시그너처 SIGNATURE > 또한 전통 프랑스 요리로 콘셉트를 변경하고, 호텔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요리와 서비스, 나아가 기술과 문화의 계승을 목표로 삼고 있다.
맛있게 진화하는 곤충 가스트로노미
무인양품 무지(MUJI)의 귀뚜라미 파우더를 넣은 전병이나 초콜릿을 판매하거나, 곤충식 자판기가 등장하는 등 곤충식은 일본에서도 확산되는 중이다.
원래 나가노 등의 지방에서는 곤충을 먹는 전통적인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곤충식을 대체식으로 받아들여 할 수 없이 먹거나, 흥미성으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식재료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 맛을 끌어올리는 곳이 바로 <안티카다 ANTICADA >이다.
이곳의 시노하라 유타 대표를 필두로 지구를 사랑하는 젊은 팀이 만드는, 로스팅한 귀뚜라미의 고소함을 살린 맥주나 귀뚜라미로 육수를 낸 라면, 곤충의 맛과 식감을 살린 코스 요리는 창의력 넘치는 신시대 곤충 가스트로노미로서 앞으로 더욱 주목받을 것이다.
'연결'을 만드는 타블 도트
지난해, 한국 미식가에게도 인기가 높았던 후쿠오카의 <라 메종 드 라나튀르 고>의 후쿠야마 다케시 셰프는 레스토랑을 폐점하고 가간 아난드 셰프와 공동으로 새로운 레스토랑 <고간 GOH GAN >을 오픈했다.
연이어 올 1월, 자신의 이름을 본뜬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고 GOH >를 오픈했는데 콘셉트는 ‘타블 도트’. 커다란 식탁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정해진 메뉴를 식사하는 것으로, 주인이나 셰프가 함께 앉아 같은 음식을 나누기도 한다.
예전에 여관의 투숙객을 위해 주로 행해지던 식사 형태로 최근 지방 오베르주, 농가 등에서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타블 도트는 서로 모르고 지내던 사람들의 공동 식사 테이블이라는 점에서 일생에 단 한 번 있는 인연으로 연결고리를 갖게 된다.
2023년 가을에 아자부다이 힐스로 이전을 예정하고 있는 가와테 히로야스 셰프의 <플로릴레주 FLORILEGE >도 타블 도트 콘셉트를 적용할 예정. 주인장과 손님이 함께 식탁에 앉는다는 의미에서는 <빌라 아이다>도 같은 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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