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시장의 외형이 커지며 원자재를 가공해 프랜차이즈 가맹점에 공급하는 제조공장의 중요성이 커졌다. 어떤 업체와 계약을 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당락을 가르기도 한다. 경기 북부지역에는 수많은 육가공 업체가 즐비하다.
경기도 포천시 소홀읍에 위치한 ㈜세누는 족발, 보쌈 등 육고기를 가공·생산하는 OEM(주문자위탁생산) 회사이다. 하루 생산량은 5~7톤으로 연간 외형은 100억에 달한다. ㈜세누의 차명호(53세) 대표는 업체와의 신의를 지켜오며 20년 넘게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전국 외식 프랜차이즈, 식당 등 500여 곳에 물건을 납품하고 있다. 공장부지는 약 1,157㎡이다.
중고 아이스크림 냉장고 하나로 시작한 사업
차명호 대표는 호프집, 옷장사 등 여러 사업을 해오다가 IMF를 맞으며 육가공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수중에는 500만 원이 전부였다. 어느 족발집에 족발 삶는 일이 힘들다는 푸념을 옆에서 듣고선 대신 일을 해준 것이 사업의 시작이었다.
중고 아이스크림 냉장고, 솥단지 하나를 놓고 족발을 삶았다. 경기가 어렵다 보니 3년 동안은 한달에 20만원 정도밖에 손에 쥐지 못했다. 아이 유치원비 12만 원을 빼고 8만 원으로 생활한 적도 있었다.
분명히 한솥에서 나온 족발인데 사람마다 평이 달랐다. 어떤 이는 짜다는 반면 다른 사람은 싱겁다고 말했다. 사업 초창기에는 사람을 입맛에 휘둘려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손톱으로 땅을 판다는 심정으로 앞만 보고 일하다 보니 사업이 차츰 올라오기 시작했다. 차 대표는 맛에 대한 자부심, 돈보다 사람을 보는 경영방식으로 지금까지 사업을 키워왔다.
맛없으면 안 판다.
㈜세누 제조공장에서는 꼬리 빼고는 다 삶는다. 그만큼 생산하는 고기 종류가 다양하다. 족발, 보쌈을 기본으로 돼지머리, 내장, 오소리감투, 감자뼈를 다룬다. 또한, 우족, 소깐양, 소뽈살, 스지, 양지 등 소고기 부위도 취급한다.
족발은 졸이고 보쌈은 삶는다. 차 대표는 오랜 경험에서 얻은 자숙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세누 공장에서는 직화 방식으로 고기를 조리한다. 똑같은 레시피라도 직화로 요리하면 맛이 더 뛰어나다. 육고기 잡내가 나지 않고 고소하다.
맛에 대한 고집 덕분에 ㈜세누 공장은 언제나 뜨겁다. 한여름에는 60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물류 출하 시간을 맞춰야 하기때문에 새벽 6시에 출근해 오후 3~4시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직영차 6대를 보유해 서울, 수도권은 직접 배송하며 거리가 먼 지역은 물류 업체를 소개해준다.
스팀방식을 쓰면 1년에 3천~5천만 원을 절감하나 맛 때문에 직화를 포기할 수 없다. 겉은 쫄깃하고 속은 부드러워 스팀방식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보통 냉장고를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맛이 없어지기 마련이나 ㈜세누의 고기는 한 달이 지나도 처음과 맛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족발·보쌈은 방부제를 넣지 않아 냉장으로 30일간 보관할 수 있다. 냉동 제품은 1년간 보관 가능하다.
“직원들이 고생하는 걸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우리를 믿고 계약한 업체를 생각하면 맛과는 타협할 수 없다. 맛에 자부심이 없고 흔들려선 사업을 이어가기 힘들다. 공장장이 부부싸움하면 신기하게 고기 맛이 없어진다. 직원이 육체·정신적으로 편안하게 일하도록 더욱 신경 쓰려 한다. 서울은 비계 적은 고기, 경상도는 비계 많은 부위를 선호하는 등 지역마다 차이를 보이는 점이 재밌다.”
얼굴은 매일 안 씻어도 마음은 매일 씻자
차 대표가 족발 장사를 한 계기는 조금 벌어도 좋으니 노력한 만큼 버는 장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거래처에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고 많이 팔기보다 오래 거래를 지속하는 것이 목표이다.
작년에 HACCP 인증을 받은 후 학교 급식 거래처와 계약할 기회가 찾아왔다. 마진율이 좋아 순간 혹했지만 기존 거래처 납품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 과감하게 포기했다. 일정 선에서 만족하고 늘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일하려 한다.
차 대표는 10년째 오늘 생산한 따뜻한 족발, 보쌈을 독거 노인에게 드리는 사회 기부활동도 꾸준히 하며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앞으로는 개, 고양이 사료처럼 반려동물 식품 쪽으로 사업 확장을 구상 중이다.